모스크바의 북쪽 숲

이즈마일로보의 매력

by 넙죽


모스크바의 북쪽 숲


모스크바에 살면서 비교적 우리 부부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곳은 모스크바 북쪽지역이다.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지 못햐 가장 큰 이유는 집에서 비교적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는 마음 또한 멀게 만드니까.


숲과 공원이 많은 이 지역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즐기기 위해 우리는 그 근처의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호캉스이기도 하니 우리 부부는 이번 탐사에 모스크바 숲캉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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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창문에서만 바라봐도 모스크바 북쪽 지역의 숲이 얼마나 광활한 지 알 수 있었다. 우선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이스마일로보 공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러시아의 공원은 각각의 공원이 숲이나 다름없다. 도심의 나무를 심어 인공적으로 만든 공원이 아니라 자연 숲에 사람이 갈 수 있는 산책로를 뚫어 공원을 만든 느낌이었다.


러시아에 있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광활한 대자연에 푹 안겨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고질병이었던 비염이 러시아에 있는 동안 만큼은 나를 괴롭히지 못했던 것은 모스크바의 숲들 덕분이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지를 체감한 순간들이었다.


특히 오르막 길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평지에서 수많은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자작나무를 포함한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러시아의 숲을 거닐다 보면 온몸이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한국과는 다른 식생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 꽤 오랫동안 길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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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이스마일로보의 숲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규에 놀라게 되는데. 가끔 보이는 관람차라던가 호수 같은 것들을 이정표 삼아 방향을 익히지 않으면 길을 헤매기 딱 좋다. 공원 안에서도 얀덱스 맵(러시아의 지도앱)을 켜지 않으면 내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니까. 공원의 전체를 모두 눈에 담고 발로 밟아보고 싶었으나 해가 지고 있었고 정말 공원에서 조난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밭길을 돌려 호텔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가을 도토리 테러


다음날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뒤 새로운 공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모스크바의 가을은 매우 짧기 때문에 조금 조급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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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찾은 공원은 '보타니체스키 사드'라는 곳이다. 직역하자면 식물정원이랄까. 역시나 평온하고 조용한 공원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큼직한 나무들이 양옆에 도열해있던 숲길이었다. 산보다는 평지의 숲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 걸을 때마다 행복해지는 길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나를 정화시키는 느낌.


그렇게 모스크바의 가을을 온 몸으로 만끽하던 찰나에 얼굴을 무언가가 강타하는 통증을 느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방어자세를 취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강타한 범인을 찾아보니 때가 되어 나무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도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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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도토리에 맞으면 상당히 아프니 조심하라고 언질을 주었더니 금세 눈이 똥그래진다. 가을 바람에 후두둑 떨어지는 도토리들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과 같이 느껴져서 바람이 불면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감싸거나 나무가 없는 길로 잠시 피해있기도 했다. 이번 가을은 도토리군의 안면강타로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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