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를 만나러, 툴라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을 찾아서

by 넙죽

남쪽에 위치한 미지의 도시, 툴라


모스크바에서 또다시 나름의 장거리 여행을 시작했다. 전에는 북쪽의 야로슬라블을 갔다면 이번엔 남쪽의 툴라다. 툴라라는 도시는 소련시절 무기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철강으로 유명하다. 때문인지 도시는 관광도시라기보다는 공업도시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나름 기차 여행에 적응했다고는 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나 보다. 중간 중간에 인터넷이 안되는 구간 또한 있어서 지루함에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있을 무렵 툴라역에 도착했다. 툴라역에 도착하자 철강도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실제로 공기 속에 철 성분이 담겨있어서인지 공기에서 쇠 냄새가 났다. 툴라역에서 나와 익숙한 택시 어플을 켜고 택시를 잡아 원래의 목적지인 톨스토이의 영지, 야스나야 폴라냐로 향했다.


툴 1.jpg


툴 2.jpg


톨스토이의 흔적을 찾아, 야스나야 폴라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사실 내가 톨스토이를 좋아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글이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의 단편선은 몇번이고 연거푸 읽었으니까. 그의 글을 읽고있자면 내가 어떤 곳에 있던 나를 밀내음이 나는, 수확철의 러시아 농촌으로 데려다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소설은 삶의 중요한 교훈을 주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하지만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삶의 자세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야 1.jpg
야 2.jpg
야 3.jpg


특히 기독교적 가치관 아래에서 탐욕이 아닌 청빈을, 성실한 노동의 가치를 중시했던 그의 메시지와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러시아라는 이국적 공간이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야 4.jpg
야 5.jpg


야 6.jpg


톨스토이의 영지였던 야스나야 폴라냐는 귀족의 영지라기 보다는 소박한 농가의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마치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간이 현실에 구현된 것 같은 느낌. 가을이란 계절감이 주는 왠지 모를 풍요로움도 시골 농촌에 놀러온 기분을 주어 기분을 들뜨게 했다. 낙엽을 밟으며 톨스토이의 영지를 둘러본 후 영지 한쪽에 자리한 톨스토이의 무덤을 찾아갔다. 이렇다 할 묘비없이 그저 봉분과 그 위에 무성하게 자란 풀들만이 그의 무덤을 구성하고 있었다.



야 7.jpg


톨스토이는 말년에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지향했다던데 그는 사후 저작권 수입을 재단에 기부하는 문제를 두고 아내와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겉으로만 보면 그의 아내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의 원고의 퇴고 및 수정을 그의 아내가 도맡아 했고, 톨스토이의 자녀만 해도 10명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보면 나는 솔직히 그의 아내 편을 들고 싶어진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들이 자신의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일들이 너무도 많았고. 세월이 갈수록 세상에는 절대선이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툴라 크레믈 둘러보기


야스나야 폴라냐를 둘러본 다음날, 그러니까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전 그래도 도시의 중심인 크레믈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러시아에 조금 살아봤다고 러시아 지방 도시에 있는 크레믈들은 익숙한 편이지만 의외로 각 도시 크레믈마다 약간의 특색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도 어렵다. 이곳의 크레믈은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을까.


크 1.jpg
크 2.jpg
크 3.jpg
크 4.jpg


붉은 벽돌 담벼락 안에 너른 터가 있고 역시 정교회 성당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지라고 하기엔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 든다. 이른 오전인데도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툴라 크레믈에 대한 감상은 한마디로 아기자기하달까. 크레믈 성벽 안쪽으로 툴라의 특산물인 툴라빵 '프랴닉'을 파는 상점들이 많다. 역시나 툴라의 명물인 사모바르들도 간간히 보이고. 아내는 프랴닉을 보고 경주 황남빵 같은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맛을 보니 그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밀가루 빵 위에 설탕 코팅 그리고 안에는 단팥 대신 잼이 들었다는 정도. 맛은 투박하고 얼추 예상되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여행을 온 기분을 내게 해주는 것은 그지역 특산품 아니던가. 여행의 들뜸이 마법의 향신료가 되어주기도 하니.



크 5.jpg
크 6.jpg
크 7.jpg


크레믈을 나와 수변공원을 걷는다. 적당히 운치 있고 햇볕을 쬐고 멍 때리기 딱 좋은 공원이었다. 아내와 자리를 잡고 앉아 기차 시간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을 했다. 역시 답은 먹고 걷는 것. 모스크바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는 무엇인가 먹는 것이 조심스럽기 때문에 왕창 배를 채워두자는 논리고 꾸역 꾸역 식사와 디저트를 밀어넣었다가 아내에게 이정도면 폭식이다 그럴거면 살이 쪄서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말아라 등의 잔소리를 들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크 8.jpg
크 9.jpg
크 10.jpg


keyword
이전 23화모스크바의 북쪽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