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닌그라드 혹은 쾨니히스베르그

육지의 섬과 같은 도시

by 넙죽

육지의 섬,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영토이지만 육지의 섬 같이 다른 국가들에 둘러싸여있는 곳이 있다. 러시아에서 이지역을 육로로 가려면 반드시 다른 나라들을 거쳐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우선 칼리닌그라드가 러시아의 영토가 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칼리닌그라드의 원래 명칭은 쾨니히스베르그, 바로 프로이센부터 이어진 근대독일의 발상지 같은 곳이다. 독일의 영토였던 이 곳은 2차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한 후 소련에 귀속되었다.


소련에 귀속될 당시만 해도 리투아니아라던가 벨라루스, 라트비아 등이 소련에 속해있을 때여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의 주요도시와 육로로 이어져있었지만 위 국가들이 독립하는 등 이른바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육지의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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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일의 영토였던 만큼 이 도시에는 독일의 흔적을 느껴볼만한 곳들이 남아있어 다른 러시아의 도시들과 다른 분위기가 난다고들 한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하고 방문한 도시였다.


하지만 칼리닌그라드 도시 전체를 통틀어 그런 지역이 많지는 않다. 그저 대성당과 몇개의 독일식 건축물들이 이곳이 과거에 독일의 영토였음을 느끼게 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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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칼리닌그라드의 중심은 역시나 이곳의 대성당이다. 성당 건물 자체도 웅장하고 그동안 러시아에서 정교회 성당들을 주로 보다가 오래간만에 고딕양식으로 꾸며진 카톨릭 성당을 보니 감회가 새롭긴 했다. 칼리닌그라드를 구경하다 보면 다시 이 대성당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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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에는 유명한 인물이 한명 잠들어 있는데 바로 임마누엘 칸트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부리는 칸트가 지금은 러시아의 영토 안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활동했을 때나 사망했을 때 모두 이 곳은 독일의 영토였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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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로 출발하기 전, 직장 선배님으로부터 칸트의 위대함에 대해서 한참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아둔한 나로서는 그분의 말씀을 많이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명확하게 이해한것은 현재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부분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 정언명령 등 고등학생 시절 윤리와 사상 시간에 배웠던 몇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의 사상의 일부분도 이해하지 못한 나였지만 역사상 위대한 거인의 무덤을 마주했을 때의 웅장함은 느낄 수 있었다. 죽음 이후에도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대부분의 인간에게 허락된 부분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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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의 매력은 밤에 있다


대성당 부근에 숙소를 잡은 덕분에 일정 내내 대성당을 방문할 수 있었다. 대성당의 모습은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채롭게 다가왔는데 특히 밤에 만난 대성당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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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손을 맞잡고 대성당 주위를 산책하는 것도 좋았고 유럽에서 겨울철에 흔히 만날 수 있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며 강변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프랑스에서는 뱅쇼라고 부르는 따뜻한 와인은 오렌지나 사과, 계피 등과 와인을 넣어서 끓인 것을 말하는데 와인의 알콜은 날아가고 맛과 향은 더해진다. 겨울 강바람에 추운 몸을 녹이기에도 좋고 감기기운이 있을 때도 좋다. 러시아어로는 글린트베인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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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는 솔직히 말하자면 가성비, 효율이라는 키워드하고는 맞지 않는 곳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존재도 알지 못했을 수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막상 방문해보니 이 도시의 맛이라는 것이 따로 있더라. 나는 이곳의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여유롭게 걷는 것이 좋았다. 시간에 쫓겨 여행하지 않아도 되었고 때로는 안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여유로운 밤산책과 마주친 작은 기쁨들, 소소한 대화. 여행을 완성하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형물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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