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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내 여름의 즐거움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34

by 마마튤립

어릴 적, 여름이 되면 방학이 가까워지기 전부터 '이번 방학땐 뭐 하고 놀지?' 하는 생각에 늘 들떠있었다. 잘 지켜진 적은 거의 없지만, 원형 차트에 하루 일과를 빼곡히 적어 알록달록 색칠해 두는 걸로 여름방학 시작의 팡파레를 울리곤 했다.

한 달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엄마아빠와 방방곡곡 여행도 가고 신나게 놀다가, 밀린 방학숙제를 몰아서 하다 보면 어느덧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시절 나의 여름은 뜨겁지만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느덧 어른이 되고 나니 방학이라는 개념이 슉 사라져 버렸고, 여름은 무척이나 뜨겁지만 초록이 무성해서 좋은- 그럭저럭 장단점이 적당히 뒤섞여있는 계절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여름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밤호박 되시겠다.

예전보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게 되는 내게 딱 좋은!


밤호박은 여름에서 늦가을까지만 나오고 단호박과는 달리 밤처럼 포슬포슬한 식감을 가지고 있어서, 퍼석하지만 달달한 밤을 좋아하는 내 입맛엔 최고의 간식이다. 밤은 까기도 어려울뿐더러, 맛있는 밤과 맛없는 밤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가끔은 애벌레가 까꿍하고 나와서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밤호박은 대개 밤과 같은 달달함과 포슬함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찾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 여름에는 작년에 밤호박을 구매했던 곳에서 출하 전 사전예약 알림이 떠서, 재빠르게 예약 구매를 했다. 밤호박이 배송된 뒤 숙성이 되기를 기다려줘야 했는데, 빨리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기다리지 않고 먹었다가 제대로 실망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밤호박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 후 2주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쪄 먹으니, '바로 이 맛이야!' 소리가 절로 났다.


껍질만 깨끗하게 씻고 전자레인지 혹은 찜기에 익혀주기만 하면, 간단하게 아주 맛있는 여름 간식을 만나볼 수 있다. 육아를 하며 밥을 챙겨 먹기 어려운 요즘엔, 아기를 보다가 밤호박을 씻어 전자레인지에 7-8분 정도 돌려놓고 중간중간 주린 배를 채워준다. 고소한 라테와 함께하면 적당한 포만감도 들고, 그래도 건강한 걸 챙겨 먹은 듯한 기분도 든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라테와 밤호박은 그렇게 한 모금 그리고 한입씩 야금야금 사라지곤 한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나의 사랑 밤호박!

내가 산 밤호박과 엄마가 주신 밤호박이 똑 떨어져 간다. 빨리 더 구매해서 밤호박의 계절이 가기 전에 부단히 먹어줘야겠다. 나의 이번 여름은 냉장고에 보관해 둔 밤호박이 사라질 때야 비로소 끝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서른네 번째 날이다.


여름이 되고 아기의 간식 메뉴에 밤호박이 추가되었다.

간식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간단히 찌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너무나 간편히 줄 수 있는 메뉴이다.


아기의 간식이자 나의 밥이 되어주기도 하는 기특한 밤호박.

밥을 다 먹은 아기 앞에서 나의 주린 배를 채우고자 밤호박을 한입 베어 물면, 아기도 먹고 싶은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쭉 빼며 입을 벌리곤 한다.


'아니 아기야 너 방금 밥 다 먹었잖아!'

하며 과육을 살짝 떼어 입에 넣어주면 맛있는지 먹자마자 입을 또 아- 하고 벌린다.


오늘도 간식으로 쪄놓은 밤호박을 아기에게 주는데, 이유식을 양껏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밤호박을 아기새처럼 잘 받아먹어 기특하고 귀여웠다. 입에 넣은 밤호박을 바로 손으로 꺼내어 이곳저곳 뭉개며 묻히는 바람에 턱받이와 옷에 노란 물이 들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 잘 먹기만 한다면 여기저기 묻히는 것쯤이야! 엄마아빠가 잘 닦아주면 되지 뭐!


아기도 여름의 밤호박이 참 맛있나 보다.


이렇게 하나하나 계절의 음식을 아기와 맛볼 수 있게 되니, 앞으로 맞이할 계절들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기의 모습이 벌써 그려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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