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끝]
에필로그
다시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책 첫 장을 넘기면 아름이 적은 이 활자가 가슴에 뜨겁게 내려앉는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내가 죽어가는 고양이로부터 배운 것. 깊이 사랑하면,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 나는 내 고양이를 깊이 사랑했다. 내 고양이가 이승에서 삶을 마치고 고양이별로 소풍을 갔다고, 그 사랑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니다. 아이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벅차게 한다. 내 고양이도 다시 태어나면 내가 되고 싶었을까.
가슴으로 낳은 내 새끼. 내 소중한 고양이 미미.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되렴. 고양이도 개도 사람도 좋아.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좋겠다. 나는, 훗날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그 무엇이로든 너와 함께이고 싶다. 내가 무엇이든 말이다. 또 네가 무엇이든 말이다. 사랑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니. 사랑을 알게 해 줘서 고맙다. 나의 첫사랑, 내 하나뿐인 고양이,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야옹!
<미미의 일기>
집사가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야옹으로 답한다.
엄마, 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집사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겨우 자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야옹한다.
엄마, 나는 엄마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집사가 운다.
엄마 안녕. 엄마를 만난 그 여름을 기억해. 내 나이 다섯 살, 사람으로 치면 지금 엄마 나이쯤 됐겠군. 나도 엄마도 피부가 팽팽하고 보송보송하던 그런 시절이었지.
우리가 함께 여행한 시간의 강엔 많은 물고기가 뛰어놀았어. 엄마와 나는 함께 물고기를 잡고, 맛있게 먹고, 헤엄을 치고, 물을 첨벙거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비바람이 불면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주로 엄마가 얘기하고 내가 들어주는 쪽이었지.
엄마가 슬퍼하고 아파할 때, 실은 나도 다 알고 있었다는 걸 엄마가 알까. 그래서 내가 먼저 엄마 곁으로 가서 따뜻한 온도와 털을 나눠줬다는 것을 말이야. 엄마는 한가롭게 누워 볕을 쬐는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니, 자주 물었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걸 고백해. 우리 고양이들의 위대한 점이지.
그리고 지금부터는 정말로 중요한 고백이야. 나는, 엄마의 따봉 고양이 미미는 세상을 다 가진 고양이였어. 다른 사람이 아니고 엄마에게 사랑받았으니까. 엄마의 모든 친구들도 날 추앙했지. 그건 우주 최고의 미모를 갖춘 고양이로 태어난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아야 할 마땅한 대접이었긴 해.
엄마. 다시 태어나도 나는 엄마의 고양이가 될 거야. 아니 엄마의 무엇이든 될 거야. 엄마의 마음이 되고 싶어. 엄마의 눈물이, 엄마의 웃음이, 엄마의 가장 큰 기쁨과 슬픔이 되고 싶어.
마지막 몇 달은 솔직히 힘들었어. 그래도 엄마가 나를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걸 알고 나는 좋았어. 그런 사랑을 받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잖아. 행복했어 나는.
엄마가 나에게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걸 알아. 하지만 누가 그랬거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다고.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라고.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았어.’(*주)
엄마, 이곳은 아름다워. 내가 좋아하던 따뜻하고 기분 좋은 봄의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고 맑아. 나는 매일 친구들과 크고 작은 벌레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양지바른 언덕에서 따뜻한 볕을 쬐며 몸단장을 해. 그리고 늘 엄마를 보고 있어. 엄마가 울 때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었어. 나는 언제나 엄마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슬피 우는 모습은 나를 슬프게 하니까.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기쁘게 먹고, 친구들과 즐거운 얼굴 하고, 혼자 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때 나도 덩달아 행복해져. 엄마가 거친 숨으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탈 때도 난 언제나 엄마와 함께 있는 걸.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래.
나는 정말로 잘 지내. 엄마가 언젠가 이곳으로 올 때 내가 가장 먼저 엄마를 만날 거야. 엄마는 나의 둥근 걸음걸이가 좋다고 했지. 가장 둥글고 가장 가볍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엄마를 마중하러 갈 거야. 엄마가 사랑하던 내 살랑살랑 꿀벌 꼬리를 드높이 올리고 말이야.
엄마는 날 보자마자 크게 소리치고, 가장 환하게 웃다가 울고, 마침내 날 번쩍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며 춤추겠지. 난 늘 그랬듯 엄마 왼쪽 어깨 위에 올라가 기분 좋은 고릉고릉 노래를 부를 거야. 그럼 엄마는 내 궁둥이를 신중하게 두드려줄 테고. 그러면 엄마도 나도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한쌍이 될 테지.
그렇다고 너무 빨리 오진 마. 엄마가 지금 있는 곳에서 엄마 몫을 다 하고 올 때까지 나는 착하게 기다릴 거니까. 지금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돼. 우리 고양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나는 떠날 때도 사실 크게 슬프지 않았어. 그런데 엄마가 너무 슬퍼해서 내 마음이 아팠어.
엄마, 사랑해. 내가 살아서 가장 사랑한 사람, 이 아름다운 고양이별에 와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야. 울지 말고 씩씩하게. 매일 기쁘게 살아요. 아름답고 짧은 삶을 마음껏 사랑해요 엄마.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미미가 기분 좋은 야옹을 보내요.
엄마의 털구름, 엄마의 나무, 엄마의 별 미미가.
*주 :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