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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하루 한번 하늘을 볼까

by 있잖아

친구들과 하루 한 번 하늘을 보자는 약속을 했다. 사진을 찍어 서로 보여주기로 했다. 별것 아닌 제안이었지만 이상하게 해보고 싶어졌다. 요즘 내게 주어진 임무 중 가장 쉬운 일이 될 거라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사진첩을 열었을 때, 내 갤러리는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낮의 구름, 파란 하늘, 낙엽이 흩날리는 장면을 담고 싶었는데, 내가 남긴 건 늘 밤하늘이었다. 전철 창문 너머로 본 야경조차 희미하게 남았다.


바쁘다고 하기엔 그렇지도 않았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늘 밤에만 닿았던 것 같다. 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는데, 모아둔 건 전혀 다른 것들이다. 이 아이러니가 나답기도 했다.

같은 하늘을 보지만, 사진첩 속엔 서로 다른 시간과 색이 남는다. 결국 하늘을 담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여유를 담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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