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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Feb 09. 2023

굿.바이

이 글을 쓰던 날은 친한 동기의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결국 성과급을 받기 전에 이직하기로 한 언니는 곧 인사팀에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러 간다며 사내 메시지를 주었다. 


지긋지긋하면서도 울고 웃었던 추억이 많은 곳을 떠나는 날. 우리는 잠시 아련했다가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회계법인에서 6년 동안 크고 작은 이별을 계속했더니 이제 동기의 퇴사는 별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이별이 잦은 건 업계의 높은 회전율 때문이다. 업무량이 많아 이탈이 잦다 보니 회전율이 회사 앞 백반집 점심시간보다 높은 것 같다. 어쩔 땐 한 팀의 모든 실무진이 퇴사할 때도 있고 한 직급이 한 번에 우르르 퇴사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까지 나가는 걸 6년 동안 꾸준히 봐왔다.


매 분기 누군가의 휴직, 이직 소식을 듣다 보니 잘 지내냐는 말 대신 “언제 나가세요? 아직 다니시네요?” 따위의 안부 인사가 익숙해졌다. 1년 차 때는 선배 회계사들이 저런 말을 주고받는 게 다른 이들의 사기를 꺾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고 보니 저런 말에 사기가 꺾이기엔 평소에 맞는 풍파가 꽤 세더라. 


예전 팀원에게 업무차 연락할 일이 있어 사내 메신저에서 그분 이름을 오랜만에 검색한 적이 있었다. 이름을 써넣으며 혹시 퇴사해서 검색이 안 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던 터라 퇴사를 안 한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분도 내가 재직 중인 게 의아했나 보다. 서로 어쩌다가 아직 다니고 계시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었다. 




지금은 이별이 자연스럽지만, 저연차였을 때는 헤어지는 게 아쉽고 서툴렀다. 2년 차 때 처음으로 친한 동기가 퇴사했는데, 그땐 사내 메신저로 나눈 마지막 대화를 따로 저장해 둘 정도로 이별에 질척거렸다. 1년 차 때는 몇 개월 동고동락한 매니저님이 다른 팀으로 옮긴다고 하여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겨우 바로 옆 팀으로 옮기는 거였고 개인적으론 전혀 친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팀'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잘 끝낸 후 다음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나는 관계였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 평생직장을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학생 땐 팀이나 회사를 쉬이 옮길 수 있다곤 상상하지 못했다. 


업계에 발을 담그고 나니 이게 회계법인의 장점이었다.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여러 사람과 돌아가며 일할 수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이 거래처는 이분과, 저 거래처는 저분과 나가게 되었다. 법인 간 이직도 쉬워서 수틀리면 나간다는 마인드로 일하는 분들이 꽤 있다. 어렸을 땐 이걸 몰라서 그렇게 나간 분들까지도 그리워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만큼 헤어진 사람과 다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어느 업계가 그렇듯 시장은 좁고 만날 사람은 소속된 곳과 상관없이 계속 만나게 된다. 필요할 때는 서로의 인맥이 되어 이직을 도와주거나 새로운 거래처와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좋은 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되기도 한다. 


나도 이직할 때 이전 연도에 먼저 퇴사한 선배 회계사의 조언을 받았다. 퇴사 후에는 이전 회사 동료들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똑같이 이전 회사, 지금 회사 욕을 하며 수다를 떤다. 




박 이사님은 후배들이 퇴사한다고 해도 잡는 법이 없었다. 나에게도 서로 불편할 일 없이 ‘굿’바이를 하는 게 중요하니, 퇴사 일정이 확정되면 스케줄 조정을 위해 빨리 알려달라 했다. 너무 쿨해서 조금 서운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사님이 막내일 때, 1년간 믿고 따르던 팀 선배들이 한 번에 다 퇴사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누구든 언제나 떠날 수 있으니 정을 덜 주려 한 걸 수도 있고, 어차피 다시 만나는 바닥이란 걸 잘 알아서 매번 아쉬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나도 내가 퇴사할 때 즘엔 꽤 연륜이 생겼으니 잠깐만 아련하고 말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두고 가는 처지가 되니 같이 더 일하고 싶은 선배들과 더 알려주고 싶은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어색한 마음들이 뒤죽박죽이었다. 여러 이상한 애(愛)와 증(憎) 사이의 감정이 들쑥날쑥했다. 생각보다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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