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좋아하는 엄마
엄마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신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왜 좋아하느냐 물으면 빗소리가 좋다고 했고 비가 오면 자연의 냄새가 더 짙게 나고 식물들이 행복해하는 거 같아서 좋다고 소녀처럼 맑게 웃으며 얘기하셨다. 어릴 땐 그저 비 오는 날의 꿉꿉하고 눅눅한 공기가 불편해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다 근처 살았을 땐 태풍의 영향도 많이 받았기에 늘 비와 사투를 하며 등 하교를 해야 했고 길거리에 처참히 뽑힌 나무들과 떨어진 간판들을 보며 무서움에 떨기도 했다. 그런 날엔 늘 어김없이 따뜻한 수제비 국을 해주셨다. 멸치 다신물과 무와 미역을 넣고 끓인 걸쭉한 수제비. 애호박과 따뜻한 감자를 먹으면 비를 맞은 몸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우리 가족은 산이 둘러싸인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순전히 아빠의 일 때문이었지만 그곳은 엄마의 고향과 조금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산이 보이자 엄마는 바다를 보는 것보다 좋다며 행복해하셨다. 삶에서 늘 자연의 냄새를 맡고 흙을 밟는 걸 중요시했다. 아마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 다른 무엇보다도 자연을 사랑해서 그러셨던 거 같다. 비가 오면 자연과 땅이 기뻐한다고 늘 행복해하셨다. 날씨에 한없이 영향을 받는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습관처럼 가뭄이 오는 걸 염려하셨고 태풍은 무서워했다. 바람과 공기의 차이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산 근처로 이사를 오자 비가 오면 풀 냄새 흙냄새가 한층 더 짙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다의 시원하고도 비릿한 물 냄새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자연이 주는 냄새에 나도 점점 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가 오는 날 엄마가 방실방실 웃는 얼굴이 떠올라 더 좋았다.
이번 추석 엄마는 비가 오기를 보름달에 간절히 기도했다.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어 외삼촌이 농사를 짓는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동네 올레길 공원 저수지가 바짝 마른 게 너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그곳에는 항상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금지 어구가 붙어 있었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물이 없었다. 당연히 물고기도 없었고 늘 주변을 배회하던 오리들도 먹을 것이 없어 허공에 그저 꽥꽥거리기만 했다. 비쩍 마른 저수지는 앙상하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볼품없어 보였다.
그냥 말로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직접 가서 보니 누가 헤집어놓은 것 마냥 비어있었다. 올여름 서울은 아쉬울 것 없이 무섭게 비가 퍼부었고 비는 진절머리가 났던 상태였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직접 보게 되니 나도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추석이 지나고 태풍이 북상한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엄마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퍼붓지는 말아야 할 텐데 비 피해는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함께 왔다. 간접 영향만으로도 피해가 속출했다는 기사와 뉴스도 함께 올라왔다. 안타까운 마음과 비가 내려줘서 가뭄 걱정이 덜어진 기쁜 마음이 함께 왔다. 늘 좋음과 나쁨은 함께 온다.
오늘은 엄마가 올레길과 등산을 다녀와 사진을 올려주셨다. 곳간에 쌀이 한가득 들어찬 것 마냥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연의 본래 모습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바람도 무섭게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순식간에 한 발작 다가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