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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l 01. 2021

'초콜릿', 나의 사랑을 그대에게

달콤함과 쓴맛은 함께한다.


 초콜릿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건, 단연 기분 좋게 하는 달콤함이다. 그건 설탕과는 전혀 다른 카카오의 달콤함이기에 더 특별하다.


 그리고 그 달콤함은 2월 14일만 되면 절정에 이르기도 한다. 레스토랑에는 그 어느때와 달리 남녀 커플로 짝을 지어서 방문해주는 수가 확연하게 늘어난다. 그만큼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그 순간의 힘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용기를 주기도 하고 그 이어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눈물의 짠맛처럼 혀를 내미는 쓴맛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선배... 저기 좀 봐요."

 나는 그 말에 주방에서 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 남녀 한쌍의 커플이 앉아있었는데, 여자가 일어나더니 바로 식당에서 나갔다. 남자는 여자를 쫓아가지도 않았고 한숨을 크게 쉬더니 얼굴을 감싸고 있다가 계산을 하고 퇴장했다.

 더 가까이에서 본 홀의 직원들이 말해주었다.

"고백했다가 차인 거 같던데요."

"그렇다고 저렇게 도망치듯 나가다니."

 달콤한 초콜릿이 오고간다는 발렌타인에 안쓰러운 두 사람이었다.


 초콜릿은 단맛이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만날 수 있지만, 반대로 쓴맛이 더 강하게 만날 수도 있다. 




 카페에서 와플을 먹으려고 주문한 적이 있으실까요. 와플만 먹으면 목이 마를 것 같아서 직원에게 음료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아메리카노를 추천받았습니다. 그 당시엔 아메리카노를 왜 먹는지 그 쓴맛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으며 주로 인스턴트 커피나 초콜릿이 들어간 프라페를 마시곤 했죠. 하지만 직원의 추천에 따랐고, 그 추천은 후회를 남길 겨를도 없었습니다.

 와플에는 반죽 자체에도 달콤함이 있고 시럽도 뿌려주기에 매우 달죠. 혀는 맛의 상하관계가 확실한 감각이기이기에 강한 단맛을 느꼈더라면 더 강한 단맛을 입에 가져가야 단맛을 느끼는데, 그렇기에 서로의 맛과 향기를 극과 극이 다른 쓴맛과 단맛의 조합은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와플의 달콤함을 아메리카노의 쓴맛으로 다시 되새기며 씁쓸해진 입안에는 다시 와플로 달콤함을 녹인다.

 그런데, 초콜릿에는 그 달콤함과 쓴맛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초콜릿의 쓴맛과 단맛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쓴맛이 더 강한 초콜릿에도 단맛은 존재하고 단맛이 강한 초콜릿에도 쓴맛이 존재하죠. 실제로 일상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초콜릿이 당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쓴맛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와플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처럼.



 사람은 씁쓸함을 알기 때문에 달콤함을 원합니다. 

 그 상반되는 조합은 그 어떤 것에도 통용이 되죠.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또 그렇게 반대로 잃는 다는 것에 슬픔을 알기 때문이죠. 소중한 것은 곁에 두고 싶은 법이고,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영원히 두고 싶기도 하죠.


 술을 먹고 안주가 필요한 것처럼, 인생이 쓰기에 술이 달다고 하는 사람처럼.

 늘 자신을 달래 줄 것이 필요하고. 씁쓸함을 자주 느끼고 있는 만큼 달콤함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렇기에 2월 14일의 발렌타인의 힘을 빌어서라도 사랑을 고백하는 게 아닐지.





 한국이든 유럽이든 아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콜릿은 남녀 간의 사랑의 징표, 증거를 여겨져 왔다. 그만큼 사랑을 담기에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그렇기에 성스럽고 귀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유럽의 시인은 초콜릿을 찬양하기도 하며, 초콜릿의 원산지의 유적지에는 카카오나무에 옥수수 신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그림이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초콜릿을 누군가에게 건넨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그 사람에 어떻게 향해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성스러운 물질체다. 그렇기에 그런 마음을 전한다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은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고백한다는 것 자체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은 건, 아주 인간적인 부분이니까.


 연애, 사랑에는 늘 서로 행복하기만 한 달콤함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사랑하면서 단맛과 동시에 쓴맛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건 사랑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똑같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달콤함을 알기에 슬픔이라는 쓴맛을 깨닫고, 그 쓴맛을 알기에 달콤함이 얼마나 황홀한지 깨닫는다.


 

 달콤하여 포근함을 주기도 하고 씁쓸하여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한다. 

 초콜릿 같은 인생과 사랑.
 

 마냥 달콤하지 않은 당신의 사랑처럼.

 당신의 초콜릿엔 어떤 쓴맛이 들어가 있을지, 어떤 달콤함으로 이끌지 그 기대가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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