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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n 26. 2021

나 자신을 위한 약속.

자신을 위한 냉정함.

"뭘 쳐다만 보고 있어?! 빨리 119에 전화해!"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그 누구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본 적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오너의 큰 목소리 하나가 직원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멀뚱멀뚱 주방 안을 보는 홀의 직원도 그 주방 안에서 벌벌 떠는 요리사들도. 그리고 그 외침에 놀란 손님들 까지도.

 홀에서는 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고 빨리 출동을 요청했다.

 더 이상 우리 레스토랑은 오늘의 영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차가운 물을 용기에 퍼올 뿐 어떻게 응급대처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빨리 119 응급대원 분들이 빨리 와주시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주방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주방은 그 어떤 것도 벨 수 있는 칼날이 도마 위를 두드리고 있고, 모든 갈아버릴 것 같은 칼날의 기계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재료를 납작하게 만드는 기계에 400도씨를 넘기는 오븐에 이어서 기름이든 뭐든 들끓게 만드는 화로를 언제나 눈앞에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요리사들도 마찬가지다. 주방은 아주 위험한 곳이다.

 그건 굳이 주방이 아니더라도, 익숙함에 속아서 안전함에 신경을 멀리하게 만든다.

 우리 또한 설마 피클을 만들기 위해서 끓이고 있던 물이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뒤엎어 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웹툰 작가 '유지별이'님 제공


 그 어떤 직장이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혼자라는 말은 1인 자영업도 포함되는 말이다. 사람은 사람관의 관계를 통해서 살아가는 것 처럼, 판매자가 있으면 구매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고, 사장이 있다면 손님도 있어야 하고 협력해주는 사람들도 존재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동료들의 이야기다.

 손님이 다양각색이라면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선 여기의 방식이 있는 거야. 물론 네 말이 전부 틀린 게 아니겠지만, 우선 네가 속한 곳에 네가 따라올 생각부터 해야지."

 그는 조금 고집이 쌘 편이었다.

 사람들은 주관적인 사람과 고집이 쌘 사람의 차이점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두 사람도 하나의 사고방식에 올곧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는 기준에서, 주관적인 사람은 자신이 가는 목표 길이 틀렸다면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 그 목표로 향하지만, 고집이 쌘 사람은 그게 틀리고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나아간다.

 그는 후자에 좀 가까웠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꽤나 강한 편이라서 수긍하는 척을 하더라도 결국 뒤돌아서면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만큼 나는 그렇기에 같은 잔소리를 반복했다.

"스테이크 고기를 펜에서 그릇으로 옮길 땐 두 손으로 하라니까. 파스타도 마찬가지야. 하나하나 확실하고 안전하게 해."

 한 손으로 고기를 옮기면 어떻냐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스테이크 같은 경우엔 굽고 레스팅이라는 기술이 이용되고 또 굽기 전에도 준비과정이 걸리는 요리이기에 꽤나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재료의 값도 값이지만, 한 손으로 옮기다가 잘못하다가 흘리게 되면 그 작업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귀찮더라도 설령 사소하더라도 우리끼리 하는 작은 약속은 지키라고 강요한다.

"바쁘고 귀찮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우리 주방에서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은 너도 따라야 해."

"알겠습니다."

"사소해 보여도, 이건 우리 주방 사람들에게 지키자고 정한 하나의 약속이야."

 나는 제발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게 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분명 그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잔소리가 무색하게, 그는 실수가 아주 적은 편이었고 스스로의 컨디션 조절은 물론 휴가를 다녀오거나 쉬는 날 다음에도 자신의 체력을 조절해서 근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꽤나 프로의식이 강한 편이었다. 그만큼 빠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빠른 일처리에는 '스킵'이라는 과정도 존재했다.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생략하는 것이다.

 빠르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소한 것이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자고 강요했지만, 그의 일 습관이 전에 일하던 곳에서부터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사소한 약속' 조차도 '스킵'을 해버리게 되었고, 결국엔 사건이 터져버렸다.



 그건 입안의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서 내놓는 피클을 만들 때였다.

 피클은 무와 양파 오이들을 조각조각 썰어 담아 피클 물을 따로 만들어 끓인 다음에 재료들에서 쏟아붓는데 재료와의 온도차로 인해 순식간에 피클 물이 스며들어 식힌 뒤 냉장보관을 한다.

 피클 물은 대용량인 만큼 약 30kg의 무게만큼 끓이게 된다. 높은 화로 위에 끓이고 있고 통 안에 담긴 것이 액체인 만큼 직접 들고 나른 다음에 붓기 어려워서 여러 번 작은 통에 옮겨 담아서 부어버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스킵'을 했다. 한 번에 일을 쉽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어깨보다 높은 손잡이를 행주로 감싸 잡아 들어 옮기려고 했지만, 행주가 손잡이의 뜨거움을 다 없애지 못해 그대로 뜨거운 손을 놓아 버린 것.

 100도씨가 넘는 피클 물은 그대로 그를 덮치고 옆에 있던 오너에게까지 퍼졌다.

 오너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완전히 자신의 몸을 덮어버린 그는 두꺼운 앞치마를 쓰고 있더라고 하더라도 몸안에 스며든 뜨거운 물은 심각한 화상으로 이어졌다.

"뭘 쳐다만 보고 있어?! 빨리 119에 전화해!"

 그는 너무 큰 고통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모습에 주방 안에서는 그 누구도 '스킵'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 놓고 보다가 뒤늦게 그의 몸에 남아 있는 열을 식혀주기 위해서 물을 부어주었다. 그때는 그렇게 빨리 출동한다는 119가 얼마나 늦는 걸로 느껴지던지 지금의 눈앞의 광경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 또한 열심히 하고 빠른 임무수행을 하려고 했던 것뿐이었으니까.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소하더라도 약속을 한 것에는 다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낳고 이 아이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자고 하는 것도 하나의 약속이다. 그것을 약속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하다.


 안타깝지만 그도 그런 사소한 약속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귀찮더라고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었더라도, 나의 잔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고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그래서 더 괴롭고 안타까웠다.

 옆에 있어주었고 지켜봐 왔던 사람으로서.

 좀 더 화를 내고 윽박질러서라도 지키게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나 또한 후회를 하고 있던 도중, 과연 내가 화를 내고 어떻게 잔소리하고 험하게 해도 그가 과연 그 약속을 지켰을까 하는 점이었고, 어쩌면 그렇게 크게 다치기 전까지 계속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약속을 했으면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야하고, 잘못을 했으면 용서를 구하고 미안함을 표현해야한다. 피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으니. 하지만 그가 누구에게 미안함을 표현할수도 받은 상처를 해결해줄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주방에 들어온 게 잘못된 운명처럼.


 그 후론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사소한 약속 하나 어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무서운 거였다.

 그 결과를 눈앞에서 목격을 했으니.


 누구는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디 큰 약속을 지킬 수 있겠냐고 다그친다.

 되려 큰 약속을 더 신경 쓰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큰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진 모르나, 사소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으면 큰 약속을 지킬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소함은, 사소함에서 나타나는 디테일로 꽤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사소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한마디로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자신에게 어떤 영향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우리에게선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화상을 입은 그도, 그 사건을 목격한 동료들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우린 계속 살아가고, 요리사로서 요리를 해야 했으니. 



우연양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9xwy.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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