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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May 13. 2021

나는 엄마의 집밥을 모른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살아 남는다.


 엄마는 일찍 결혼을 했다.

 그 시절의 엄마는 완전한 산골 소녀였고 첫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신혼 시절도 마냥 순탄치 않았다.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서 장사를 하는 동시에 주거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 즉 시댁 부모님의 사업장이자 주거지에 살게 되었었고, 신혼부부인 엄마 아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큰 방을 하나 내주며 커튼으로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 나이의 엄마의 나이는 21살이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엄마는 30대의 초반에 불과했다. 요즘으로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어리고 청춘일 시절에 엄마가 되었고 바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가난하고 힘이 들었고 그 결과 나 조차도 태어날 때 저체중에 잘 먹이기도 못해 많이 아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나와 내 동생은 알아서 밥도 먹고 알아서 놀고 알아서 공부해야 했다. 초등학생이지만 학교를 간 뒤에 바로 단과학원을 갔고 나의 재능을 찾아주기 위해서 태권도 미술 음악학원들을 여럿 보내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와 동생뿐이었고, 우리가 잠에 든 사이에 부모님이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시간이 대략 11시나 12시 사이쯤이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은 나였다.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 아침잠이 적었고 엄마가 잠들기 전에 준비해 두었던 밥상 위의 밥을 먹고 학교로 향했다.

 아침의 메뉴는 대부분 김과 감자 반찬이었고, 부족하면 내가 알아서 냉장고에서 꺼내먹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내가 "빵이 좋아!"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아침 식사로 종종 빵과 잼이 얹혀 있곤 했었다.

 엄마 아빠를 깨울 수 없었다. 워낙에 늦게 돌아오고 내내 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깨우지 않고 밥 먹고 등교하는 게 익숙했다.

 무엇보다 사실, 그 시절의 엄마는 나에게는 아빠보다도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에 오히려 익숙해지는 데에 편했다.

 엄마에게 성적표를 가져다주는 것을 무서워했던 만큼 말이다.


떡볶이를 노리는 나의 조카.


 그러다가 결국 나는 1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요리를 해서 저녁식사를 차려보았다.

 그 요리는 참치김치찌개.

 그냥 김치 넣고 참치 넣고 물에 끓이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라면보다 쉬웠다.

 엄마가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고,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그 어린 나이에 나와 내 동생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청춘을 희생한 거에 감사하고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


 단지 불만이 있더라면, 엄마 아빠가 일을 쉬고 집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거나 주말에 어디론가 놀러 갔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는 것. 그런 어린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는 늘 내 생일에는 생일파티를 꼭 열어주며 기념일을 꼭 챙기곤 했다. 

 아마 그만큼 나와 내 동생에게 미안한게 많았던 것 같았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나쁠 건 없다. 다만 긍정이 무대책이 되지 말아야할 뿐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과하다보면 그저 무대책이나 다름 없는 마음가짐으로 변질 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서도 버틸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아무런 대책 없이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으로 기대하고만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기술력에 따라 맛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정신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렇기에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든이가 좋은 컨디션으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손님에게도 맛있는 음식이 전해질테니.

 그렇기에 아무리 어려운 시기를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노력을 한다는 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은 점점 갈길을 잃어버리는 자기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기에.


 반면에 나쁘게만 생각했다면, 엄마에게 그런 챙김을 받지 못해 섭섭하거나 미움이 생겨 어떻게 나아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정말 아쉬운 건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안다는 부모님 집에 돌아가서 맛보는 엄마 집밥이라는 게, 나에겐 딱히 추억할 만한 게 없어서 '그리운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


 지금은 내가 우리 집의 주방의 지배자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나로선 엄마의 손맛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겠지만, 엄마한테는 아들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니. 그거면 된 거겠지.

 자신의 기준으로서 발동되는 긍정적인 사고는 부정적인 것조차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할 수 있다.

 마냥 상황에 아쉽고 우울해 하기만 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테니까. 그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사고로 돌릴 순 없겠지만, 그렇게 피해 갈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피해 갈 수 있는 게 좋다. 결국 상처입는 건 자신과 그 옆의 소중한 사람들일테니.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한다.

 아마 내가 아이를 가지고 키우게 된다면, 그 아이는 남들과 다르게 엄마의 손맛이 아닌 아빠의 손맛으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내도 나의 요리를 자랑거리 중 하나로 둘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엄마의 손맛을 모르는 녀석을 만들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또 그 아이는 나 처럼 주방에서 칼을 잡게 되는 거 아닐지, 언젠가 요리를 가르쳐줄 날이 올지도 모르는게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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