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택
제일 아끼는 후임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에는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어서 미움 투성이었다.
주방안에서 머리카락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모자를 쓰지 않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고, 첫인상도 마음에 들지 않다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결국 서로 알아가며 대화를 할수록 오히려 친근함을 쌓아갈 뿐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나 못생겼음에도 4년이나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편견이라는 것은 좋지 않지만, 4년이라는 것 때문에 더 놀라웠다. 대학교에서 처음 만나서 군대까지 기다려주고 의가사 제대를 하면서 이제는 동거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여자 친구 어머니의 아랫집에서.
내가 그 사실을 안 시점은 그를 미운털을 박아놓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친구한테 어지간히도 잘해줬겠다 싶은 생각이 앞서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시기에, 그는 나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듯 움찔움찔거리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퇴근 안 했어?"
나는 탈의실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거기에는 손님이 다 나갔음에도 마감정리를 하지 않은 매장에 다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은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반사적으로 따라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여자 친구가 와서, 잠깐 이야기를 한다고..."
그렇다고 하기엔 아직 그 후임은 요리복 차림이었고, 주방 안에는 공기를 빼주는 후드가 돌아가는 게, 분명 여자 친구에게 뭔가를 먹이려는 모양새가 보였다.
괘씸하거나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에서 여자 친구와 단 둘이서 기분 내 보고 음식을 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몰래 직장의 물건으로 여자 친구를 챙겨준다는 건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에게 웃으면서,
"야 여자 친구냐?"라고 툭툭 치며 말했고 잘 정리해서 마감해라고 말한 뒤 빠져나왔다.
"편하게 있다가 가세요~"라고 그 후임의 여자 친구에게 말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퇴근하면 매번 여자 친구를 마중하러 나갔었고, 어떤 날은 여자 친구가 직장 앞에 그를 마중하러 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번 얼굴을 마주한 이상 볼 때마다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그 시간은 늘 10시 이후였다.
둘은 같이 동거를 한다면서 일부러 각자의 직장까지 찾아와 마중을 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 후임도 집에 있다가 여자 친구가 퇴근할 때쯤이면 마중하러 가기도 했고, 본가로 가야 하기 위해 기차를 타는 날에도 여자 친구를 마중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지극정성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편이었다.
나는 매번 그렇게 서로 마중하러 나가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매번 까지는 아니고요. 지금은 여자 친구가 일을 쉬고 있어서요. 심심해서 마중 나오는 걸 거예요."
"계속 그러다가 안 그러면 서운해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마냥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해 주던걸 해주지 않으면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처럼, 오랜 커플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뭣보다 제가 많이 좋아해요. 제가 좋아서 마중 가러 가는 거기도 하고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흠... 이런 게 을의 연애라고 하는 걸까 싶었다. 뭐든지 상대를 위해서 맞춰주는 그런 연애.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이야기를 해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고, 미운털은 하나하나씩 빠지기 시작했었다.
그는 학창 시절 때부터도 늘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했다.
연상의 선배를 좋아하기도 했었고, 선생님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생긴 편도 아니고 못생긴 편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편이라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잘해주고 먼저 구애하지 않으면 사랑을 쟁취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게 을의 연애라고 하는 건가?"
그는 먼저 상대방에게 잘해줬고, 늘 그 사람의 기분에 맞춰주면서 행동하기도 했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저는 그래야 했어요. 그게 좋지 않거나 그런 것보다는, 그냥 제 방식이었어요. 스스로 을의 연애를 하는 게. 아니 솔직히 이런게 을의 연애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렇기에 먼저 늘 차이기만 했었고, 상처를 받은 적도 많았다고 했다. 성형수술을 생각해 본 적도 있었고, 최선적으론 너무나도 고르지 않은 치아를 교정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이게 내 표현이라고 하면 '착한 남자에게는 질린다고 이렇게 잘해주기만 하면 질려서 떠나버리는 건 아닐지', 오히려 '그게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고 했다. 그게 을의 연애의 단점이라는 건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스스로의 사랑 표현의 방법이었고, 그 방식으로 좋아할 뿐이었다. 그 방식 자체가 자신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안요소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야 확신이 든 것이다.
"물론, 을의 연애 방식이 상대방을 질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좋을 대로 다 해주니까 질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데에 을이고 갑이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서로 좋아하니까 평등해지는 건데. 그건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방식의 차이죠."
그렇게 그는 지금의 여자 친구에게 다가갔었고, 그때 다가갔던 방식으로 여전히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이게 싫으면 네가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떠난다는 건 그런 저를 좋아하지 않을 뿐인 거니까, 헤어질 운명인 거겠죠."
사람은 본연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만의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감춘다면 언젠가 큰 트러블이 있을 것이고,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받아들여야만 평등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건 어찌 보면 명백한 공식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었다.
"뭣보다 을의 연애라는 그 자체는 짝사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표현이 을의 연애방식 비슷하게 따라갈 뿐이에요. 을의 연애를 함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연애하고 서로 사랑하는데, 누가 을이고 누가 갑이겠어요. 서로 이렇게나 평등한데 말이죠. 단순히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 아닌 저의 사랑의 표현 자체가 그런 방식일 뿐인 거죠. 좋아서 잘해주고 더 잘해주고 더 아껴주고 말이죠. 저는 그저 이게 저의 사랑 표현의 방식이고, 저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방법이에요. 그만큼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의 그 마음을 알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뿐이죠."
"와... 쩌내."
"네? 뭐가요?"
"너 개쩐다고. 대단해."
그런 말을 하는데, 어찌 편견 때문에 싫어할 수 있겠나 싶었다.
사람들은 상대에 맞춰만 가기만 하는 연애방식을 을의 연애라고 하지만,
녀석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좋아하니까 잘해주는 대로, 잘해주고 싶은 마음대로 표현할 뿐이었다.
그게 자신의 솔직한 모습 그 자체이기도 했으며, 그 모습에 질려서 떠나던가 싫어서 떠나던가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건 그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줄 상대가 아니라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방식이라고 하면서.
그게 그 만의 연애 방식이었다. 단순한 자발적 을의 연애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의 사랑의 표현방식으로.
"물론 그게 질려서 떠나거나 할 순 있겠지만, 어쩔 수 있나요? 그런 제가 싫다는데. 그게 맞지 않으니까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거고, 지금은 그런 저를 좋아해 주는 여자 친구가 4년이나 옆을 지켜주는 거겠죠?"
그때 아마 그에게 박혔던 미운털이 다 빠졌던 것 같았다.
대화만큼 상대방을 잘 알게 되는 수단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업무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장난을 치곤 한다.
"그래서? 너네들 언제 결혼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진심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는 쿠득쿠득 웃을 뿐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