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보잘것없을까.
나는 정말 궁금해.
내가 왜 아직까지 이렇게 보잘것없는지가.
부모님은 엄하지 않으셨고, 성적에 대해서도 성과에 대해서도 보챔이 없으셨는데.
내가 가장 엄한 부모님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그렇게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항상 친한 친구는 있었지만 곧잘 한 명이 괴롭히곤 했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잘하니까.
무언가 뛰어나서 교사가 인정해 주니까 괴롭히지 못하는 걸 경험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렇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엄격한 초자아가 열심히 작동을 시작했고
입시 이후 누구보다 실망한 초자아는 더 집요해졌으며
그로 인해서 긴 시간 상담을 받았다.
수험생 때도 없던 시험 불안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시험 불안으로 난 공부를 하나도 할 수 없었고
벼락치기로 매번 7일 안에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공부했다.
나는 입시에서의 실패와 나의 불안이 내가 실력과 효용을 증명해 내면 사라질지 알았다.
스스로 나의 쓸모와 나의 능력을 증명해 내면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난 정말 시험이 무서워서 가끔 죽을 거 같았는데.
역설적이게도 결과는 정말 좋아서 매번 장학금과 모든 상들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자기 확신은 생기지 않았고 시험은 무서웠다.
결국 그 문제는 시험이 없어지고야 나아졌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석사과정에서 시험을 마주쳤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대학생 때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나는 내가 쓸모없다는 것만 졸업하고 증명했거든.
망쳐도 뭐. 그럼 네가 그렇지 뭐.
공부를 안 해도 네가 그럼 그렇지 뭐.
예전에는 내가 낮은 성적을 받는 게 용납이 안 되었는데
그냥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싫어졌기 때문인가
대학생 때의 정신건강은 썩 좋지 않았지만 유능했던 스스로가 그립다.
나는 그럼에도 나를 놓지 않았는데
좋아진 부분도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이 자기혐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딱 한번 스스로를 정말 사랑한다고 이야기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원래도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어서
햇살 같은 양지바른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곳에 있다가 햇빛을 쬐는 것 같아서.
그래서 햇빛도 정말 좋아했다.
물론 이번 여름 햇빛은 제외.
요즘의 나는 인공 햇빛 같은데
그래도 햇빛이 조금이라도 생긴 게 어디야
나아지다 보면 나도 햇살 같아지겠지.
내 안의 모든 주저함과 두려움이 사라지면 좋겠다.
모든 걸 도전할 수 있게.
날아오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