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쓰는 시간
하루의 시작이나 끝, 혹은 하루 중 아무 때나. 일기를 쓰는 시간은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시간에 쫓겨 곁눈질할 새도 없었던 하루,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기만 하는 하루, 매 순간을 눈에 담고 마음에 각인시키고 싶은 하루, 별 다른 게 없이 그저 잔잔한 하루...
이런저런 하루하루를 일기에 담다 보면 내 서사가 차곡차곡 쌓이고 삶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어떤 날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일기의 위클리 공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올해는 한 면에는 위클리, 다른 한 면은 줄로 된 다이어리를 골라서 미처 못 채운 속내는 줄 면에 마음껏 장황하게 쓴다.
어떤 때는 감정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어서 서둘러 다이어리를 펼친다.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곱씹고 되새기면 명상의 시간까지 덤으로 얻는다.
물론 일기고 뭐고 만사 다 귀찮을 때가 있다. 전에는 그런 때조차 일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억지로 꾸역꾸역 끄적일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굳이 그러지 않는다. 의무감이 좋은 감정까지 도려내어 다이어리를 집어 드는 시간이 고역의 시간이 되면 안 되니까.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 중 어떤 게 기억에 남을지 모를 일이다. 붙잡아 두려던 문장이 금세 눈 밖에 나 지워져 버리기도 한다.
흐릿한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는, 지워질 수도 있는 순간을 살려내는, 감정의 끄트머리에서 매달려 헤매고 있을 때 끌어당겨 차분히 정리해 주는, 흩어진 기억의 편린을 그러모아 매듭지어주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지금에 힘을 실어주는 게 바로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일기를 쓰면서 새로운 단어를 생각하기도 하고 문장을 고쳐쓰기도 하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내게 일기는 쓰기의 연습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자그마한 자물쇠가 달려 있던 초등학생 때의 첫 일기장이 생각난다. 담임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던 일기가 아닌 나만의 비밀일기장에 어린 마음에도 수없이 오고 갔던 감정과 생각을 최선을 다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한 권 한 권 채웠던 기억이 난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아 둔 다이어리 더미를 보면 그것들을 구태여 펼쳐서 내용을 보지 않아도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색색의 빛이 들어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