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봄이 나란히 놓인 시간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있었다.
등장인물 소개가 지나고,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를 따라가다가 어느 지점에 생각이 머물러, 머릿속을 환기시킬 겸 거실을 천천히 왔다 갔다 했다.
그 김에 창문을 활짝 열어 집안도 환기시켰다.
양쪽 창문에서 불어오는,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바람이었다.
'나가야겠다'
계절은 늘 내가 예상한 속도와 시기를 비껴간다.
기온의 수치가 아니라, 감각으로 다가오는 계절의 요소들 속에서 나는 한 발짝씩 뒤처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알아채는 순간 숙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봄은, 가을과 많이 닮아 있다.
꽃이 만개한 벚나무 아래를 걸으니 꽃잎 우산을 쓴 듯 포근했다.
낯선 곳에서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한껏 높여 노래를 들으며 걷다가 세상의 소음이 그리워져 음악을 껐다.
한결 낫다가 그것마저 아쉬워 그냥 이어폰을 빼 버렸다.
따뜻한 햇볕과 살랑거리는 바람, 뽀얗고 샛노란 꽃잎이 사방에 핀 이 계절.
완벽하게 조화롭고 아름다운 이 계절을 느끼다가 그만 웃음이 났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 감사하고 벅찼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어디서도 보장받지 못하는 다음을 생각하는 대신, 이 계절과, 이 공기와, 이 햇살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
그게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밖에서 맞은 봄이 충분했다면, 이제는 안에서 다시 만나고 싶은 봄이 있었다.
잠시 덮어두었던 『무의미의 축제』 위에, 바깥의 바람이 얹혀 있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아까보다 글자들이 더 부드럽게 읽혔다.
인물들의 대화와 생각에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나는 책과 봄이 나란히 놓인 시간 속에서 느긋하고 조용한, 아주 사적인 기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