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탈중앙화의 길
2년 정도 논스 멤버로 코리빙에 살다가 논스 운영팀(주식회사 논스의 직원)에 합류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차이는 '탈중앙화'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멤버였을 때 저는 논스가 탈중앙화 된 커뮤니티라 좋았습니다. 이곳은 중앙화 된 컨트롤 타워 없이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만들어가는 커뮤니티고, 그래서 주인 의식이랄까요? 내가 먼저 나서 보고 다가가 보고하는 것들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게 수동적으로 이리저리 따라다니는 것보다 만족감도 소속감도 더 컸고요. 다른 멤버들도 '논스의 매력은 같이 만들어가는 커뮤니티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논스 운영팀 (당시에는 논파 - 논스 파운데이션이라고 불렸습니다)이 수면 위로 올라와 커뮤니티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는 반발심도 들었습니다. 여긴 너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운영팀에 합류한 후, 논스가 얼마나 중앙화 된 곳인지 알게 됐습니다. 운영팀은 엄청난 권력, 논스(정확히는 논스 운영팀)의 언어로 말하자면 Social Capital(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논스는 코리빙/코워킹 공간에 기반한 논스 커뮤니티의 생명선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주식회사의 구조로 공간 임대업을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강남 부동산은 할많하않입니다. 다음 기회에 다뤄보겠습니다)
누가 우리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이는 호점 투표를 통해 어느 정도 탈중앙화 되어있지만, 코리빙 개별 호점 vs 논스 전체 커뮤니티의 인센티브가 다르고, (주)논스에게도 공실은 영업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녹여내기 위한 끊임없는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와 유사시에 누가 우리 구성원이 될 수 없는지를 결정합니다.
논스 운영팀은 중앙화를 원하나?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흔한 직장인의 고충 이야기를 하자면, 운영팀이 원하는 탈중앙화 정도는 이만~~~~~~~~~~~큼인데, 논스 구성원이 바라는 탈중앙화는 이만~~ 큼 인 것 같습니다. 논스 공동체(아직까지는 코리빙과 코워킹 이용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주)논스에 월세를 납부하는 고객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애초에 탈중앙화가 가능했다는 게 용합니다.
논스의 탈중앙화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로, 다른 셰어하우스 사업자는 구성원 약 16명 당 1명의 커뮤니티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논스는 코리빙 약 70명, 코워킹 약 3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커뮤니티 매니저는 단 한 명입니다. 대체 불가능했던 그가 "off the basecamp" 한 지금 시점에서는 0명입니다. 논스 운영팀이 1주일 워크샵을 떠났는데 그들의 부재를 아무도 모를 정도로 커뮤니티가 잘 굴러가서 운영팀이 깜짝 놀랐다는 썰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논스는 어쩔 수 없이 중앙화 된 커뮤니티고, 운영팀은 탈중앙화를 외치지만, (주)논스와 논스 커뮤니티와 그 커뮤니티의 구성 조직(코리빙 개별 호점)과 개별 구성원의 인센티브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탈중앙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Enspiral은 충돌하는 각각의 인센티브를 잘 일치시켰습니다. 우선 조직 구조 자체가 가로 세로, 씨줄 날줄을 잘 엮어내(weave) 개별 구성원이 여러 역할을 거치도록, 심지어는 동시에 여러 개의 모자를 쓰도록 합니다. 어느 한 입장에 고착화될 수 없습니다. 운영팀 역할을 돌아가면서 합니다. 모든 멤버가 2주씩 운영팀이 됩니다!
라면 물 끓일 때 냄비 뚜껑이 들썩이는 이유가 물 분자들이 열에너지가 높아지면서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며 치고받아서라고 하더군요. Enspiral 멤버들도 넘치는 에너지로 (책임의 크기에 따라 역할에 계층이 있다면) 조직의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고, 짧게 짧게 턴을 바꿔서라도 (관심 분야에 따라) 좌우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 우리 구성원이냐'에 대해서도 느슨한 역할과 책임을 가진 '기여자(contributor)'가 있고, 핵심 '멤버(member, opt-out 이 아니라 opt-in으로 연장됩니다)'가 있으며, 이들이 소소하게 엮이는 '팟(pod)' 모임이 있고, 이들을 관통하는 부서 같은 '워킹 그룹(working group)'이 있으며, 팟이 자라서 워킹그룹이나 벤처(venture, 아예 별도 조직으로 스핀 오프)가 되기도 하며, 이 모든 상호 작용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촉매제(catalyst) 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유한책임회사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이사회(이들의 임기가 2년으로 가장 깁니다)가 있으며, 이사회 멤버는 가위바위보로 이사장을 정합니다! 이긴 사람이 하는 거게 진 사람이 하는 거게?
논스 운영팀은 '논스도 Enspiral처럼 되면 구성원들이 논스 운영과 지속 가능성을 다 함께 고민한다는' 상상만으로도 무척 설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탈중앙화 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일단 Enspiral은 '프리랜서 길드' 성격이 강해서 서로 경제적 인센티브가 잘 얽혀있는 사이고, 논스는 아직까지 코리빙/워킹 공간에 기반한 공동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Enspiral처럼 멤버 모두에게 1주씩 소유권을 나눠주면 한 방에 탈중앙화가 완성될까요? '진정한 합의적 소유는 (마치 프로그램처럼 다운로드해서) 설치하는 게 아니라, 진화해가는 과정이다(True consensual ownership is an evolutionary process, not something you install)'라고 Enspiral 멤버이자 논스와 유사한 셰어하우스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사람이 말하더군요. 논스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나가면 좋을까요? 함께 고민해보겠어요?
(주)논스 운영팀은 논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논스는 강남구 언덕배기에 마을 비스무꾸리한 것을 만들어 같이 일하고 같이 사는 공동체입니다. '마을 만들기'는 마을 구성원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운영팀 혼자 논스 마을을 만든다면 그곳은 송도 같은 디스토피아 계획도시가 되겠죠. 운영팀은 안락한 송도보다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