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보람 Mar 20.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7  무연고자 시신

  어릴 적 나는 냉동고에 아버지를 넣는 상상을 했었다. 정육점을 했던 아버지가 벌을 줄 때마다 나를 가두었던 그 냉동고에. 작은 정육점의 냉동고는 어른 서너 명이 간신히 서 있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이 나쁘지 않았다. 부위별로 잘려진 돼지고기도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죽은 것이었으므로. 오히려 나는 고기를 썰어 내던 두꺼운 손으로 매질을 하던 아버지가 더 두려웠다.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이 다그치듯 물었다.

  “이구복 씨 맞습니까?”

  “아닙니다.”

  “가지고 있던 지갑에서 이구복 씨 신분증이 나왔습니다.”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

  “무연고자 시신은 장례 없이 화장되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해부 실습용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직원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영안실을 빠져나왔다. 병원을 벗어나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쳐 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길을 걷는 내내 시신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 아버지일 리 없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사나운 얼굴을 하고 나를 몰아치던 사내였다. 내가 시내에서 어머니를 보았다고 하면 어머니가 죽은 줄 알면서 왜 거짓말을 하냐고 했다. 냉동고 안에서 짐승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지 어미처럼 거짓말만 한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냐고 하면 욕지기를 하며 매질을 했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오후 출근을 알렸다. 직원이 간단하게 기록을 했고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서둘러 창고로 향했다. 공장에서는 고기들이 부위별로 잘게 잘리고 있었다. 위생복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살점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기도가 가늘게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드리며 천천히 호흡을 했다. 몸이 안 좋은 걸까. 냉동창고의 냉기 속으로 들어가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렬로 걸려있는 돼지들이 킁킁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올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쿵, 하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냉동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정지했다. 죽은 것들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야했지만, 얼어붙고 나면 오랜 시간 그대로였다. 나는 늘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에 갇혔던 냉동고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언제나 냉기가 가득한 곳에서 홀로 버티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은 채 얼어붙는다면 어떨까. 의외로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이전 06화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