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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보람 Mar 20. 2023

울음이 녹기 시작했다

#6  시신이 녹을 수도 있습니까?

서랍을 뒤져 일회용 젓가락을 꺼냈다. 그것의 입을 벌려 확인해 본다면 모형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실제처럼 만들었다고 해도 내부는 엉성할 테니까. 젓가락을 반으로 나눈 뒤 입술 사이에 지렛대 모양으로 쑤셔 넣고 입을 벌렸다. 얼어 있던 탓에 생각만큼 크게 벌어지지 않았지만 작은 틈 사이로 가득 들어차 있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젓가락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빨까지 벌리자 이번에는 혀가 보였다. 혀는 원색에 가까울 정도로 붉었고 뱀의 혀처럼 가늘었다.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자 나무젓가락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입이 탁 닫혔다. 그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의 눈이 느린 속도로 두 번 깜빡이면서 충혈된 흰자위를 드러내는 것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살아 있는 동물은 질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장이라도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를 것 같았다. 이 생물은 갈고리에 걸려 있는 반쪽짜리 돼지와는 다르니까. 살아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의 발가락에 미세한 경련이 시작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허겁지겁 다시 냉동실 문을 열고 그것을 던지다시피 집어넣었다. 냉동실을 닫고 나서도 손끝이 떨리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씻고 나온 일이 무색할 만큼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맥주는 어느새 물방울이 맺힌 채 미지근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나서 무언가 단단히 꼬여 버린 게 틀림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에 연락을 해 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시신은 노숙자들의 신고를 받고 발견했다고 했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깨어나지 않았다는 신고자의 설명도 이어졌다. 병원에서 안내를 받아 영안실로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몰칵 풍겨 왔다. 안내하는 사람이 차트를 확인하고 번호가 적힌 네모난 표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하나씩 읽어 나갔다. 오른쪽 끝에 있는 철제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바르게 놓인 시신 한 구가 보였다.

  “빨리 발견한 편인데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날이 더워서 그래요.”

  직원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음식이 빨리 상했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시신은 살이 녹아내리다 말고 얼어붙은 것 같았다. 속이 미식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가까스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시신의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햇볕에 그을렸는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숱이 듬성듬성했다. 몸집이 무척 왜소한 시신은 검푸른색의 반죽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 기골이 장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부피가 줄어드는 걸까. 나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시신이 녹을 수도 있습니까?”

  병원 직원은 내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정적이 일자 영안실 안에는 일정한 기계음만 울렸다. 보관된 시신 주변으로 냉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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