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될 그곳

초록으로 그리는 생활

by 피터의펜

텃밭 자리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치 시험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먼저 풀고 나면, 남은 시간은 마음 편히 쉬운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마당의 나머지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 오히려 즐겁게 느껴졌다.


텃밭은 마당 한쪽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평수도 정해졌고, 나머지 공간은 상상의 여지가 생겼다.


우리는 팔도를 유랑하며 묵었던 수많은 에어비앤비 숙소들을 떠올렸다.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집들의 공통점은 있었다. 초록의 잔디. 그 옆으론 조그마한 나무와 꽃들.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던, 함께 웃던 시간.


"천연 잔디, 꼭 있었으면 좋겠어."


다들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꺼냈지만 결국 마음은 하나였다. 잔디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평온함, 아마도 공원에서 가족이 함께 보낸 좋은 기억 덕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잔디는 예쁘게만 봐선 안 된다.

"밟아도 뿌리 뻗는 잔디풀처럼"이라는 노랫말처럼, 생명력은 대단하지만 자라는 속도도 무시무시하다. 직접 관리해 본 사람만이 아는 피와 땀과 허리 통증의 연속.


우리는 잔디가 깔린 집에서 묵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집들은 하나같이 깔끔했고, 호스트는 거의 매일 그 집에 상주하며 잡초를 뽑고 화단을 손질하고 있었다. 반대로 콘크리트 마당의 숙소는 대개 손길이 덜 닿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잔디를 가진다는 건, 그만큼의 수고를 각오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우리는 잔디를 원했다. 강아지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녀도 안심할 수 있는 공간. 강아지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작은 운동장 같은 마당. 아주 멀리까지는 못 가더라도, 자기 세상처럼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딱 6kg 강아지에게 적당한 공간. 그리고 '도망치지 않을 정도 높이'의 울타리.


물론 마당 전체가 잔디일 필요는 없다.

데크가 있어도 좋다.

아파트 베란다처럼 화분을 놓고, 여름엔 수영장을 설치하고, 겨울엔 눈싸움이 벌어지는 그런 작은 무대. 커다란 창고를 하나 올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새 우리는 마당을 캠핑장처럼, 놀이터처럼, 계절이 바뀌는 무대처럼 상상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가족회의를 멈추기로 했다. 더 나가면 '직접 건축하자'는 말이 또 나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 우리는 월차를 내고 집을 보러 갔다. 아직 매물이 사라질 리는 없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움직이고 싶었다.


부동산이 열기 전, 아이들 등굣길을 먼저 살폈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아이들.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그 풍경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날 하루, 우리는 학원가를 지나고, 공원을 둘러보고, 편의시설과 상권을 확인하며 발품을 팔았다. 부동산 중개사와 함께 집들을 둘러봤다.


"마당은 너무 좋은데요."

"집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구조만큼은 딱 우리가 원하던 그 느낌이에요."


단번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없었다. 집마다 하나 이상의 장점은 있었고, 두세 가지 아쉬움도 꼭 있었다. 수리하면 될 만한 점은 괜찮았다. 하지만 사람을 부르는 순간, 그것은 다 '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관리가 잘 되어온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시설을 갖춘 '집'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느 날 홧김에 시작된 결심이,

어느새 이렇게 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충동처럼 말했던 '이사 가자'는 말이 어느새 마음의 진심이 되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금 이 선택이 정말 괜찮을까?'
'조금만 더 둘러보면 더 나은 곳이 있을지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망설이는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며칠을 두고 다시 보러 가기도 하고,
밤마다 가족회의를 다시 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유난히 맑았던 오후 햇살 아래 그 집을 다시 마주했을 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래, 이 집이구나."


그렇게, 우리는 결국 마음이 닿는 단 한 곳을 골랐다.

계약서를 쓰고 돌아오는 길.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동네엔 가족도, 연고도 없다.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봐도 아무도 없는 곳.

그런 곳에, 이제 우리만의 '추억'을 하나씩 쌓아갈 것이다.

집은 골랐고, 텃밭은 다짐했고, 마당엔 상상이 가득하다.
앞으로 다가올 사계절이, 이 공간에 고스란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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