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에서 피어난 마음

바로, 딱 그만한 텃밭

by 피터의펜

마당을 구상할 때 한쪽 구석에는 텃밭을 꾸미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텃밭의 입지조건이라면 햇빛과 달빛이 잘 스며드는 곳. 물 주기 좋고, 물 빠짐까지 잘 되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텃밭의 크기가 꼭 넓을 필요는 없다. 아니, 어쩌면 작을수록 더 자주, 더 오래 들여다볼 수 있다. 핑계 같지만 사실이다. 그걸 깨달은 건 몇 해 전, 주말농장을 처음 시작했을 때였다.


3평이 이렇게 크고 넓은 땅일 줄은 몰랐다.


1구좌 3평을 계약하고 상추, 고추, 열무, 방울토마토, 대파 등등 온갖 농작물을 연이어 심고 열심히 관리했다.


우리는 4월쯤 시작해 2 모작을 했고,

먼저 시작한 분들은 3 모작,

더 부지런한 분들은 4 모작도 하신다고 했다.


그 정도까지는 못 갔지만 나도 열정만큼은 꽤 높았다. 가끔은 평일 저녁에도 일부러 '로또 명당'에 간다는 핑계를 삼아 들렀고 주말이면 비가 오지 않는 한 가족 모두가 총출동했다.


누가 개근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우리 농작물'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이다.


쓰러진 놈은 일으켜 세우고,
벌레에게 공격당한 놈은 보호해 주고,
병들어 골골대는 놈은 없는지 살펴보고,
물조리개에 듬뿍 담아 여러 번 뿌려주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갈 필요는 없다. 그저 정성스레 돌보는 그 마음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농장엔 '사장님'이라는 믿음직한 시스템이 있었다. 농작물 관리에 도가 튼 분이 평일 내내 상주해 계셨고 비가 오지 않아도 스프링클러는 농장의 숨을 쉬게 해 주었다.


출석률 부진으로 방치된 밭에는 가차 없이 낫질을 하셔서 잡초와 농작물을 분리해주시기도 했다. 그 믿음 덕분에 나도 점차 주말 일정으로 바꾸게 되었다.


어쩔 땐 2~3주에 한 번 들를 때도 있었지만 나의 농작물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상추와 깻잎은 수확도 안 하고 그냥 나무처럼 키우기도 했다. 먹을 수 없게 된 후에도 정이 가는 건 분명 내가 직접 심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어 밭을 갈아엎어야 할 땐 괜히 속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쉬워하다가 사장님의 농기계로 밭이 정리된 모습을 보면 다시 농사욕구가 샘솟았다.


새로 들여온 모종을 고르고,

가장 튼튼한 놈을 골라 비료를 듬뿍 뿌리고,
풍년을 기원하며 파종하는 그 고생은 즐겁기만 했다.


물론 속상한 기억도 있다.

잘 자라던 고추는 어느 날 해충에 덮였고,

토마토는 지지대를 따라 잘 자라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정글이 되어버렸다.


농사에 재주는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이 정도 수확량에 만족하는 나라면 적성검사를 해봐도 '농업인 자질 없음' 판정은 확실하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대한민국 3평 텃밭에서도 매번 흉년이었던 나를 보며 "이 이상 일을 벌이면 범죄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셨을 조상님들께 죄송하긴 하지만 나는 딱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텃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먹을 건 콩알만큼 밖에 안 나와도,

그 조그만 수확이 주는 기쁨은 실로 크다.


떫어서 못 먹던 푸르딩딩한 과실이
서서히 붉게 물드는 그 순간,

비바람에 꺾인 가지에 밴드를 감아줄 때,

지지대를 타고 수직으로 자라는 줄기를 볼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마당엔 꼭 텃밭이 있어야 한다.


매년, 매 시즌.

작지만 새로운 농작물을 키우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넓은 땅은 필요 없다. 내 기준에선, 3평 이하의 텃밭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나의 농사 능력을 초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욕심은 많다. 비닐하우스에 스프링클러까지 모든 걸 갖춘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로또 당첨 이후로 미뤄야 할 것들도 있다. 그렇기에 기준이 필요하다. 텃밭은 크지 않아도 된다. 딱 내가 매일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이면 충분하다.


작아야 오래 보고, 작아야 정을 더 주게 되니까.


"그렇게, 내 마당의 첫 기준이 생겼다.

매일 들여다보고, 오래 정 붙일 수 있는 크기.

바로, 딱 그만한 3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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