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로, 겨울이 시작됐다
오늘부로 완전한 겨울이 시작됐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직 가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작부터 겨울이었다며 이제 와서 무슨 호들갑이냐고 웃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오늘부터가 진짜 겨울이다.
사실 날씨는 이미 한참 전부터 차가워져 있었다. 밤에는 바닥 보일러를 틀어놓고 자는데, 희망 온도를 24도로 맞춰두고 누워 있으면 방바닥이 뜨끈해져 손바닥으로 짚기만 해도 데일 것 같은 열기가 올라온다. 그때쯤이면 몸은 따뜻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슬며시 '이제 그만'이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그래서 새벽에 잠시 깼을 때 보일러를 다시 끈다.
너무 뜨겁기도 하고, 동시에 난방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얄팍한 마음도 있다.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사소한 절약이 나름의 만족을 준다.
아침이 되면 바닥은 마치 꺼진 모닥불처럼 변해 있다. 불꽃은 사라지고, 어제의 열기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거실로 내려오면 공기 중에 한기가 남아 있지만, 그 차가움이 오히려 계절의 존재를 실감 나게 만든다.
잠도 깰 겸 마당을 나갈 때면 그게 진짜 겨울이구나 싶다. 밤새 따뜻했던 발바닥이 문을 나서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오늘 아침이 딱 그랬다.
잠깐 마당을 나갔는데 발끝으로 스며드는 냉기가 너무 차서 깜짝 놀라 문을 닫고 다시 들어왔다. 양말을 꺼내 신은 뒤에서야 비로소 문 밖으로 다시 나갈 용기가 생겼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제 진짜 겨울이구나.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다고 겨울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오늘을 기준으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인정했다.
이제 월동준비를 시작할 때다.
월동준비라는 건 사실 누구에게나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아파트에 살든, 주택에 살든, 텐트를 치고 살든,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라면 결국 대비를 피할 수는 없다.
그저 전년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조금 더 나은 겨울을 준비할 뿐이다.
대비를 게을리한 자의 겨울은 가혹하다. 나는 작년 겨울에 다른 집의 계량기함이 동파되는 걸 직접 봤다. 뉴스에서만 보던 '수도관 동파'는 순식간에 터져 나온 물줄기가 얼어붙으면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빙판길을 만들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생각이 들었다. 아, 겨울은 관리하고 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계절이구나. 그래서 올해는 외부 수도꼭지와 계량기함부터 점검했다.
집 안도 마찬가지다. 창문 틈을 어떻게 막을지 구상하고, 커튼으로도 충분할지, 온 집안의 온기를 어떻게 하면 지켜낼지 여러 번 고민했다. 아직 정확하게 무엇을 살지는 결정하지 않았지만 이미 장바구니에 몇 가지는 담아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바닥을 지켜줄 난방기구들을 꺼내야 했다. 지난겨울 쓰던 히터 세 개를 작동시켰더니 먼지 타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작동음이 들리는 걸 확인하니 묘하게 든든했다.
전기장판도 꺼내어 아이들 침대에 하나씩 깔았다. 핫팩도 넉넉히 샀고, 수면양말도 준비했다.
이쯤 되면 겨울을 맞을 준비는 대충 끝난 셈이다.
하지만 준비라는 건 언제나 물건으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진짜 겨울은 집 안에 따뜻한 바람이 도는 것보다 사람 사이에 온기가 도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아침이면 서로 내복을 챙겨 입었는지 확인하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이 히터 앞 따뜻한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줄줄 늘어놓는다.
잘 때가 되면 우리는 수면양말과 두툼한 잠옷을 입고 보일러가 돌아가는 안방 바닥에 누워 있다가 잠이 든다.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참 따뜻하다.
누군가 보일러를 돌리고,
누군가 난로를 켜고,
누군가 웃으며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그 모든 장면이 겨울을 견디는 힘이 된다.
집 안 곳곳에 이런 온기가 스며들면 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괜찮다. 문틈 사이로 한기가 스며들어도, 누군가의 따뜻한 숨결이 그보다 먼저 서로를 덮어준다.
생각해보면, 겨울을 난다는 건 결국 서로의 따뜻함을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다. 우리는 거실 한가운데 난로를 켜놓고, 서로에 기대 앉아 하루를 이야기한다. 그 한가운데엔 언제나 웃음소리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년 겨울을 견딘다. 단단하게 준비하고, 조금씩 서로를 덮어가며 차가운 계절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늘부로, 우리의 겨울이 시작됐다.
실제로는 정말 춥지만 어쩌면 우리 집의 온도는 지금부터가 가장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