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든 마당
단풍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록이 가득했던 나무였는데 어느새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마당을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사이, 색이 확 달라져 있었다.
'초록빛일 때 눈에 더 담아둘 걸.' 그 생각이 자꾸 뒤늦게 밀려왔다.
계절이 바뀐 걸 몰랐던 건 아니다.
길 위엔 이미 은행잎이 수북했고 동네를 오가며 낙엽이 발끝에 바스락거렸다. 그게 일상이었으니 그땐 그저 '벌써 가을이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막상 우리 마당의 나무들이 색을 달리하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아, 정말 가을이 지나갔구나.'
단풍이 든다는 건, 나뭇잎이 활동을 멈췄다는 뜻이다. 엽록소가 사라지고, 스스로를 분해하며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
그걸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주택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 데려와 손길이 가장 잘 닿는 자리, 햇살이 오래 머무는 명당에 심어준 나무인데 그 나무도 이제 조용히 긴 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이런저런 식물이 많다. 아파트 시절부터 함께한 오래된 화분들도 있고, 월동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욕심처럼 들여놓은 남쪽 나라의 식물들도 있다.
봄부터 여름 내내 '햇볕 많이 쬐어야 한다'며 마당에 내놓았는데 이제는 그 탓에 또 걱정이 시작됐다.
결국 올해도 비닐하우스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달라졌고, 공기가 다르게 불어왔다. 매년 들리는 문장 "유난히도 추운 올겨울." 이젠 뉴스 속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내 일상으로 스며드는 말이 됐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며칠 소홀했던 걸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서 물을 주려고 호스를 들었는데손끝이 시릴 만큼 차가웠다.
부랴부랴 호스에 덮개를 씌우고 외부 수도꼭지도 미리 감쌌다. 아직 얼 정도의 날씨는 아니지만 '일단 덮어두자'는 마음이 들었다.
지난겨울 잘 포장해뒀던 비닐하우스를 다시 꺼냈다.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손끝이 시려워 장갑을 꼈다가 다시 벗었다. 역시 비닐을 덮기엔 맨손이 낫다.
냉기가 손바닥에 닿자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싶었다. 가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로 겨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아파트 베란다 시절부터 쓰던 작은 온실이라 크지는 않아도, 차곡차곡 쌓으면 꽤 많이 들어간다. 잎이 여린 녀석들은 안쪽에, 그래도 버틸 만한 아이들은 입구 근처에 두었다. 바람이 새지 않도록 점검하고 나서야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작은 온실 안엔 묘하게 포근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제 좀 안심되지?"
"그래도 혹시 몰라. 밤엔 영하래."
우리는 온실을 완성하고 나서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계절이 이렇게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봄엔 잔디를 깔았고 여름엔 그늘막을 치느라 사다리를 올랐다.
이제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온다.
마당을 가꾸는 일은 결국 식물과 함께 계절을 견디는 일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집에서 맞는 첫 겨울이다. 이제서야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또 한 계절이 바뀌었다.
겨울은 조금 두렵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이상하게 설렌다.
마당에서 불멍을 하고 하얀 입김 속에서 따뜻한 차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올해 겨울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도
뿌리는 자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다시 봄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마당도,
우리의 마음도
조용히 그렇게 자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