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가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서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 이라는 곡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였을 때였다. 그 영상을 보던 나, 온몸이 그 자리에서 감전되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피아노 실력은 또 어떻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다양한 외국어는?
얘는 대체 뭐냐? 괴물이다!
감전으로 뛰쳐나가버렸던 정신이 돌아왔을 때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게 벌써 수년 전 영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뒷북치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헨리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던 것은 물론, 슈퍼주니어-M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다는 것과 대만계 캐나다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었다. 어쨌든 수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더욱 그에 대해 관심이 쏠렸었는데, 이것저것 다 제치고 지금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다름 아닌 재능에 대한 찬양이다.
헨리의 Smooth Criminal 퍼포먼스 (Image by SBS 스타킹)
이 세상에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Talent' 라고 쓰고 라틴어로는 ‘달란트’, 영어로는 ‘탤런트’, 그리고 불어로는 ‘딸롱’이라고 읽는 그것, 바로 타고난 재능을 가리킨다. 이것은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실력과는 약간 구분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타고난 재능형이 있고 반면 부단한 노력형이 있다. 타고나는 재능으로 예를 들자면 이 세상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모차르트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성악가 조수미 씨의 신이 내린 목소리와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음감도 그러하다.
반면 점프가 성공할 때까지 1000번씩 연습을 반복하며 완벽을 기했던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 선수나, 남들이 모두 자는 시간에 몰래 연습실에 나와 끊임없이 훈련을 했다는 세기의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경우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그분들이 타고난 신체적인 장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끈기와 연습으로 완벽의 경지에 오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본 헨리는 이런 위대한 분들의 경지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 노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뭐랄까 음악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요즘 재주를 경쟁하는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많다. 가끔 그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노력하고 연습해서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게 사실이고, 타고났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다. 그만큼 ‘딸롱’이란 귀한 것인가 보다.
불어에는 ‘딸롱’처럼 쓰이는 말로써 ‘동(Don)’이라는 말이 또 있다. 이 '동'이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신이 준 재능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데, 그 수준은 거의 초능력 같은 것을 설명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모차르트와 조수미 씨의 수준이라면 거의 ‘딸롱’을 넘어선 '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헨리의 연주를 이것저것 찾아 들으면서 가장 먼저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또 타고난 재능이 출중한 젊은이를 발견한 것이 기뻤는데, 문제는 동시에 가슴속에 어떤 좌절감 같은 것이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딸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나는? 나만의 ‘딸롱’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참 안타깝긴 하지만 이거 원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현실인 것이,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봐도 나란 사람은 별 뛰어난 재주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 정말 질투 난다. 내가 헨리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시샘이 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마치 버릇없고 거만한 데다가 경거망동하기까지 한,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는 천재였던 모차르트를 앞에 두고 평생 좌절과 질투 속에서 살았던 살리에르라도 된 기분이다.
이런 거라도 문질러서 부탁해 봐야 할까나? (Photo by Pixabay)
내게 무엇이 되었든 ‘딸롱’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헨리의 연주처럼 사람들을 황홀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을 테고, 꼭 연주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나 감동을 주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누가 알겠나, 나라를 구했거나 혹은 통일을 시켰을지도! 그런데 어찌하랴, 그러기에 나는 너무도 평범하다.
에잇, 모르겠다. 이번 생에서는 아무래도 틀려먹은 것 같다. 이제 와서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어디 죽기 전에 헨리 같은 연주를 해볼 일도 만무하고, 그렇다고 춤을 배워 마이클 잭슨처럼 출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글을 쓰는 것, 그것뿐이다. 그런데 그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일에 내가 만약 ‘딸롱’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진작부터 글을 써서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어야 앞뒤가 좀 맞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도 한 줄 한 줄 여전히 버벅거리고 있는 걸 보면, 그것마저도 나는 ‘딸롱’이 없나 보다 싶다. 젠장!
하지만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내가 만약 글을 쓰지 않거나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생을 마친다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세상의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타고난 ‘동’이 없다고? 그러면 노력형으로 가보자. 별 수 있겠나.
대학교 신입생으로서 첫 ‘물리학 총론’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는 확신하듯 말씀하셨다. 이 강의실에 있는 50명의 학생들 중에서 정말로 물리학을 계속 연구할 사람은 단 한 명이 있을까 말까라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곧바로 이해했다.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어쩌면 천재성이 요구되는 학문일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혹은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말이다.
그 수업이 끝난 후 중정원에 앉아있을 때, 우리는 조금 맥이 빠진 상태였다. 출발선에서 떠나기도 전에 실격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혜영이가 말했다.
“상관없어. 물론 이 세상에는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테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정말 뛰어난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거 잘 알아. 어쩌면 나는 그중에 한 점으로조차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점이라 할지라도 내가 이 우주 안에서 그저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것 같아.”
내가 오늘 밤, 딱 그런 마음이다. 이 세상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많고 그중에 정말 ‘딸롱’이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야말로 한 점으로 만큼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길이지만, 나,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가는 한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이다. 점보다 작아도 행복하다던 혜영이는 지금 미국의 한 대학교물리학 교수가 되어 여전히 우주에 점찍고 있다. 정말 멋지다!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중 몇 개는 그녀가 찍어놓은 점들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도 좌절하지 않고, 아니 좌절하더라도 계속 쓰려한다. 여전히 느리고 문장은 늘어지지만, 그래도 자꾸 쓰다 보면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미래의 어느 날, 정말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의 가슴에 진심으로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글 말이다. 그것이라면 내 남은 평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아무래도 내게 부여된 ‘동’이란 것은 어쩌면 이런 배짱이 아닌가 싶다. 나쁘지 않다. 내 '동'이 썩 마음에 든다. 혜영이가 우주에 점을 찍듯, 나는 오늘도 백지 위에 글자를 찍는다. 내 글자들이 마침내 이르러 별처럼 반짝일 누군가의 가슴, 그곳이 바로 나의 우주가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