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8시쯤 M6 채널에서 하는 <Scènes de ménage/쎈 드 메나즈>라는 시트콤이 있다. 이 제목은 ‘부부싸움’이라는 뜻인데, 여러 연령대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부부들의 일상과 우스운 풍경을 묘사하는데 정말 기발하고 재밌다.
이 여러 부부들 중에는 시골에서 중학교 역사 교사를 하는 아주 소심한 남편 Fabien/파비앙/과 공구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대단히 걸걸한 아내 Emma/엠마/가 있다. 외모나 평소의 옷 입는 스타일도 무척 터프한 데다가 집안의 공사란 공사는 다 도맡아 하는 힘센 아내가, 어느 날 저녁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발견한 아내의 모습은 완전 매력적이었다. 멋진 검정 슬립을 입고 아주 도발적인 새빨간 하이힐을 신은 채, 비스듬히 소파에 누워 다리를 요염하게 꼬고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파비앙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말했다.
“오~ 자기, 웬 하이힐이야? 이걸 신고 있으니까 당신 오늘 좀 달라 보이네. 너~무 멋진걸.”
“응, 이 구두가 너무 예뻐서 맘에 쏙 들어서 샀어.”
“아주 잘했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침실로 가서 멋진 시간을 보내지 않을래?”
그러자 엠마가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말,
“아... 그게 있잖아 자기야... 그건 좀 어렵겠는걸...”
“왜~에에에?”
어이없는 듯 남편이 물었다.
그게, 내가 이 구두를 신고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거든.
?!?!?!
배꼽을 잡고 실컷 웃고 나니, 오! 이거 정말 신선하다 싶었다. 처음에는 신고 걸을 수 없는 하이힐 구두를 샀다는 게 황당해 보이기만 했다. 그렇게 쓰지도 못할 것을 돈만 아깝게 왜 사나 한심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가슴이 뜨끔해왔다. 이런 생각 속에는 꿈이나 상상력이라고는 그야말로 1도 찾아볼 수 없고, 건조한 현실만 있는 것이었다. 하긴, 필요한 거 다 사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이미 대단한 거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누구라도 반짝이는 하이힐 구두가 예쁜 줄 몰라서 안 사는 게 아니라는 데에 한표 건다. 여자라면 누구나 저런 구두 한 켤레쯤은 신발장에 갖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신고 싶은 마음 하고는 별개로, 발이 아파서 신고 다니지 못할 게 뻔하다. 아! 정말 촌스럽다.
그래서 결국 마음속 욕망을 억누른 채 늘 편안한 구두만 찾는다. 왠지 저런 뾰족구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의 일 인양 말이다. 그렇게 찾은 편안(?)한 구두는, 그래서 늘 비슷비슷한 모양이거나 아니면 아주 못생겼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나 다를까, 쇼핑은 했는데 어쩐지 별로 즐겁지가 않다.
옷을 사러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이곳은 보통 옷가게에도 아름다운 드레스들이 많이 있다. 파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런 드레스를 볼 때마다 같은 의문을 갖는다.
‘저런 옷은 대체 언제 입는 거냐?’
드레스들이 아무리 예뻐도 내가 레드카펫을 밟고 깐느에 갈 것도 아닌데, 저렇게 앞뒤가 다 파인 드레스를 입고 대체 뭘 하겠다고 저런 걸 사겠냐 싶어 역시 눈길도 안 준다.
그런데 이 시트콤을 보고 마음을 향해 질문을 던져봤다. 과연 어떤 필요를 생각하지 않고 정말 꼭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를 사 본 적이 있던가? 꼭 비싼 것이 아니어도 좋고, 그 어디에도 효용가치가 없는 것이어도 좋다. 비록 아무짝에 쓸모가 없을지언정, 단지 스스로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선물해 본 적이 있는가? 기억나는 바가 없다!
그래서 한 번 해보고 싶어 졌다. 뭐가 그리도 갖고 싶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저지르고 싶어 진다.
신은 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하이힐이 그렇듯,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선물을 말이다. 그게 곰인형이 될 수도 있고,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지끈거려서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향수여도 좋다.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다. 금액이 크든 적든 그것이 비록 지금은 낭비처럼 보이겠지만, 현실이라는 커튼을 살짝 젖히고 생각해보면 이 쇼핑이 결코 쓸데없는 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만의 기쁨을 생각하는 마음,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아껴주는 마음으로 장만한 선물을 꺼내어 바라볼 때마다, 다시 샘솟을 만족감과 자존감을 생각하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테니까.
그대는 오늘 어떤 쓸데없고 매력적인 선물을 그대에게 해주고 싶은가?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