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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Dec 20. 2019

시간을 멈춰 세우고, 미안합니다.

시내에 나가느라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10살 정도 돼 보이는 예쁘장한 금발머리 소녀가 사뿐히 지하철에 올라탔다.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니 파리로 관광을 온 것 같았다. 소녀는 여행이 즐거웠는지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열차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열차의 출발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을 때, 어떤 마담 한 분이 뒤늦게 열차에 올랐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밀고 들어오시는 걸 보니, 그분도 관광객인 듯 보였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했고, 그 순간 내 쪽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돌아오려던 나비소녀가 여행가방 마담과 부딪칠 뻔하고 말았다. 그러자 소녀는 팔랑거리던 날갯짓을 멈추고 마담 앞에서 정면으로 멈춰 섰다. 그리고는 그림같이 예쁜 미소를 살짝 머금고 마담의 두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말했다. 


“I am sorry! (미안합니다)”


그러자 마담도 소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찡긋 미소를 짓더니 대답했다.


“I am sorry too! (나도 미안해요)”


그렇게 그 두 사람 사이에 완벽한 감정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두 사람 모두 서로 예쁘게 웃으면서 각자의 행선지로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치는 공간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Photo by 파리제라늄)


흔히 있는 일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구와 부딪치거나 본의 아니게 발을 밟게 되는 일 같은 건 말이다. 그런데 파리에 온 이후로 이런 일들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나는 작은 충격을 받는 느낌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는 순간의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선처리가 그렇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하다. 평소에도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왠지 무례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만약 내가 미안한 일이 생겨서 사과를 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어떻겠는가? 그럴 때면 머릿속에서 이런 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뭘 잘했다고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는 거야?
어라? 눈을 똑바로 뜨고 지금 그게 미안하다는 태도냐?



아마도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가 고개를 숙이는 문화여서 인가보다. 처음 만나 인사를 할 때부터 고개와 상체까지 숙여 인사를 하니 서로 눈을 마주 바라볼 일이 별로 없다. 심지어 악수를 할 때에도 그 각도는 유지된다. 한국의 평범한 일상속에서 어깨 딱 펴고 뻣뻣하게 서서 손을 내밀며 악수를 한다면, 당당하다는 해석보다는 당돌하고 건방지다는 첫인상을 남기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런 상황에, 실수를 해서 실례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할라치면 어떨까? 감히(?) 눈을 똑바로 마주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교육을 받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다. 낮은 시선이 겸손이고 미덕인 환경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나의 상식과 전혀 다른 유럽 문화에 적응하느라 가장 어려웠던 일 중의 하나였다. 각 나라마다 문화와 행동방식은 당연히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와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판이하게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는 일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물론 10년이 넘도록 파리에서 살아오면서 사고방식이나 습관들이 많이 변하긴 했다. 새로운 습관이 완전히 흡수되어 몸에 배어버린 것들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의식하고 신경을 쓸 때는 유럽 문화의 행동 양식을 갖지만, 무의식 중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습관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바로 서투른 눈 맞춤처럼 말이다. 




나비소녀를 바라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만약 그 소녀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실례합니다’와 ‘미안합니다’를 반복하며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을 것 같다. 그러니까 미안한 건 정말 진심이지만, 어떤 얼굴에게 사과를 했는지 상대방이 내 사과를 어떻게 받았는지도 모를 확률이 90% 이상이다. 부끄럽지만 그런 적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소녀와 마담의 사과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시간을 멈춰 세우고 상대방의 관심을 완벽히 장악한 후에 전달하는 미안합니다!’옆에서 바라보는 나에게까지도 그 진심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은 ‘감사합니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사를 할 때에도 감사를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Pardon! (실례합니다)’ 만큼이나 ‘Merci (감사합니다)!’가 만발하는 이곳에서는 그 대답인 ‘Je vous en prie! (천만에요)’까지도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쌩긋 웃으며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결심을 해본다. 멋쩍다는 이유로 쭈뼛쭈뼛하게 입속으로만 우물거리는 자기만족형 ‘미안합니다’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충분히 내 마음이 전달될 만한 분명한 표현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딱 한 번만이라도 직접 경험을 해보면 이거 생각보다 꽤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진심이 오가는 짜릿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불러 세우자. 10초도 멈춰 서지 못할 만큼 바쁜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가슴에 전달해 보려 한다. 사과도 당당하게, 감사도 당당하게! 한 사람을 향한 10초의 정성과 진심으로 누군가의 심장이 1도쯤 더 따뜻해질지 누가 알겠는가? 쉬이 짐작컨데 그 첫 번째 수혜자는 바로 나일 것이다.


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Photo by 파리제라늄)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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