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자신을 실제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에게 늘 엄격한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나, 남들이 칭찬할 때에도 멋쩍어하는 편이고 대놓고 거들먹거려 본 적은 없는 나였다.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만큼 배웠고 책도 보통 수준은 읽었다면서, 사는 일에 옳고 그름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을 갖췄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욱, 그러리라 믿고 살았던 (아니면 믿고 싶었던) 나의 모습과 현실 속 적나라한 나의 모습 사이의 머나먼 간극을 발견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떠나오기 바로 전날이었다.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무는 동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기가 좀 힘든 편이었다. 자동차로 집 문 앞에서 원하는 장소의 문 앞까지 이동한다는 도어-투-도어 (door-to-door) 문화가 한국에서는 기본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평균 만보씩 걷는 파리지앵의 삶이 그리워지면서 온몸에 좀이 쑤시고 있었다.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일 있을 파리행 비행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동학사 갈까? 매일 차만 타고 다녔더니 몸이 무거워. 너무너무 걷고 싶은데...”
완벽하게 화창한 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산인 계룡산 자락을 오르고 있었다. 시간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오전 11시를 막 넘어서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벌써 정상을 정복한 후 하산을 하는 등산객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우리처럼 한가한 산책을 하는 연인들도 많이 보였다.
계룡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알록달록 화려한 입구를 지나 동학사 기와가 저만치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리가 걷던 길을 따라 똑바로 십 미터쯤 앞, 샛노란 티셔츠를 입고 길 한가운데서 싱글벙글 웃고 있던 한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 소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웃으며 마주 오는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며 “안녕?”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 준비 없이 이 낯선 순간에 맞닥뜨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그를 피해 갔다. 소년은 천진난만해 보였지만 어딘가 약간 달라 보였다.
소년은 꽤 덩치가 있는 편이었는데, 그가 내밀던 뽀얀 살결의 손에는 약간 비정상적으로 작은 손가락들이 옹기종기 달려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내민 손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면서 주춤주춤 피해가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피해 가는 사람들 속에는 나.도. 있었다.
나에게 반갑게 건네 오던 미소와 “안녕?”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사적으로 소년과 또 그가 내민 손을 피하고 말았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 발자국쯤 뒤로 멀어졌을 때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엄습해 온 것은, 다름 아닌 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그 아이의 손을 왜 잡아주지 못했던 걸까?
더없이 즐거운 산책이었지만,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내내 내 행동에 대한 수치심이 가슴에 넘실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만약 하산 길에도 그 소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면, 그 아이가 내미는 손을 절대 피하지 말고 잡아 주리라!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주위로 반원을 그리며 멀찌감치 피해 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런 그들을 원망하기는커녕 무한히 사랑하겠다는 듯 아까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안녕?”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가 나로부터 1미터 앞쯤으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했을까?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동화처럼,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안녕이라고 말하며 미소 지어 주었고, 소년은 너무나 행복해하고 신나 했다. 나까지 가슴 벅차게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나는 끝내 또다시 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두 번이라니!
머뭇거리던 아까의 나를 기억하기라도 한 듯, 그가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는 핑계 따위는 대지 않겠다. 그를 스치는 순간 그가 마침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느라 바빠 보였다는 핑계 또한 대지 않겠다. 그 무렵 엄마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는 핑계 따위도...... 필요 없다.
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었다는 한 마디면 모든 핑계는 무색해진다. 나는 그저 용기가 없었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는지 모른다는 진실이, 커튼을 살짝 걷어내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흑인, 동양인, 백인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고 물론 장애인도 있다. 나는 그들과 매일 악수를 하고 가끔은 뺨에 뽀뽀를 하는 비즈(bise)도 하면서 어떤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거, 진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곳 파리에서는 잘 차려입은 프랑스인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악수를 하고 비즈를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인간을 평등하게 존중한다는 것은 분명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깊은 경외심을 갖는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렇게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다른 표현은 아닐까?
배우고 의식하고 노력하면 행동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인격은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직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하염없이 먼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아니, 거짓을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거짓을 쓸 수는 없다. 그것이 나의 글에 대한 첫 번째 약속이자 철학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이 낯 뜨거운 부끄러움과 더불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 같다.
“왜 그 아이의 손을 맞잡지 못했던 걸까?”
이 복잡한 감정과 질문이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을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소년에게 미안하다. 내 부족한 인품이 그 소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남기지만은 않았기를...... 염치없게 기도해본다.
그 날의 나처럼,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 ‘그런 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스스로에게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