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이라 어쩔 수 없이 대부분 한식을 요리해서 먹는다. 그래서 미국에서 뭐 먹냐는 질문에 "아까 콩나물 국이랑 계란말이해서 먹었는데"라고 말하면 뭔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듯 시시해한다. 아마도 "너 사는 곳에 맛있는 미국 음식 있어?"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서 자주 사 먹은, 개인적인 취향이 가득한미국 음식을 소개한다.
텍사스의 라운드 락 동네에서 1926년에 오픈하여 동네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라운드 락 도넛"이라는 도넛 맛집이 있다.Glazed (글레이즈드)를 시키면 막 튀긴 도넛을 바로 준다. 뜨끈하고 부드러워서 그 자리에서 한 두 개는 순삭이다. 바로 튀긴 도넛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 맛있기 때문에 가게 주차장에는 다들 막 구입한 도넛을 먹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은 보고 있으면 낯선 모델 같던 미국사람들도 정겹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땅콩버터가 들어간 과자를먹고는 너무 맛있어서 감탄했다. 마트 갈 때마다 새로운 땅콩버터류 과자를 구입했고 거의 대부분의 땅콩버터 과자를 다 맛봤을 때쯤 질렸다. 집착 수준으로 사들이고 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쳐다도 안 본다. 하지만 새로운 땅콩과자를 먹는다는 설렘으로 미국에서 하루하루버텼던 날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고마운 과자다.
미국에서 햄버거는 한국의 김치찌개백반 혹은 된장국백반의 위치인 것 같다. 미국인의 전형적인 한 끼 식사다. 치킨 버거는 여기서 버거가 아닌 치킨 샌드위치로 불린다는 점이 신기했고 인 앤 아웃은 양파를 어떻게 먹고 싶은지(생 양파, 구운 양파, no 양파) 기호를 묻는다는 점이 낯설었다.
한국에서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미국에 살기 위해 햄버거와 친해져야 했다. 미국의 대부분의 식당은 햄버거 가게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반배정이 되면 그 반에서 어떤 식으로든 친구를 만들어야 했던 숙제처럼 미국에서 햄버거를 사랑하는 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숙제를 시시하게 끝낼 수 있었다. 남은 숙제는 한국 가면 "아~ 미국 햄버거가 더 맛있는데"하면서 햄버거 먹을 때 미국부심 부리지 않기이다.
미국에서 주말은 대부분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구입한 샌드위치와 칩스를 들고 공원 내 테이블에 펼쳐 놓고 피크닉 분위기를 낸다.
공원에서 먹을 것을 펼쳐서 먹으면 그게 비록 시시한 것일지라도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나른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텍사스 바비큐는 텍사스의 자존심이다. 바비큐를 먹을 때마다 그들의 근거 있는 자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텍사스 바비큐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그만큼 엄청 맛있지만 자주 먹기는 기름져서 부담스럽다. 음식과도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텍사스는 텍스멕스(Tex-Mex, 텍사스와 멕시코를 결합한 단어) 요리가 발달했다. 텍사스에 살면서 그럴싸한 멕시코 요리를 같이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텍스멕스를 먹을 때마다 왠지 히스패닉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나라 음식을 먹으면 그 나라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 잠시 들어간 것 같다. 잠깐이라도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경험은 특별하다.
미국식 중화요리 체인점은 가성비 때문에 자주 이용한다. 한국인 입맛에 적당히 맞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외식하고 싶은데 돈이 아쉬울 때 정답 같은 음식이다.
미국에서 피자에 대한 첫인상은 "뭐가 이렇게 고를 것이 많아?"였다. 도우부터 토핑 하나하나, 소스 하나하나 일일이 골라야 하는 미국식 주문이 무척 생소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이번에 주문할 때는 시금치랑 버섯은 꼭 넣어야지'라며 피자에 취향을 가진 여자로 거듭났다. 선택지가 없을 땐 몰랐는데 막상 선택지가 생기니 처음엔 어색해도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즐거움과 만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