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 살면 응당 글로벌 마인드로 현지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국적의 친구를 사귀고 파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뭐 그런 환상을 다들 가지고 있나 보다. 친해진 외국인 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인싸의 삶을 살면 하루당 얼마 주겠다고 누가 제안하지 않는 한, 방구석에서 글로벌 마인드로 사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영어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는 있지만 나의 진짜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친한 친구는 없다. 그런데 미국 와서 가장 많이 대화를 한 미국인은 있다. 바로 프리스쿨에 다니는 아이의 첫 번째 미국 선생님이다. 아이 담임선생님은 반칙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의 이야기를 꺼내도록 마음을 열어준 외국인은 그녀뿐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의 첫 번째 질문은 "00(아이이름)에게 내가 첫 미국인 선생님이야?"였다. 예상치 못한 첫 질문을 했던 그녀와 나눈 스몰톡은 그래서 대부분 우리 가족의 첫 마국 생활에 도움을 주는 내용이었다.
그런 그녀가 일을 그만두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학부모 상담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휴가나 무슨 회의에 잠깐 가신다는 걸로 이해했었다. 등원할 때 선생님이 안 계시고 임시 선생님이 계신 걸 보고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구글 메일을 뒤졌더니 약 일주인 전에 아이반 선생님이 곧 그만두신다는 공지 메일이 와있었다. 제대로 선생님과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이 사실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면으로 나와 대화를 길게 한 사람, 희미하게 미국과 연결되는 느낌을 준 첫 번째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이제 내 인생에서 다시 볼 확률은 거의 제로가 되었다.
학부모 상담 때 선생님이 원하면 메일을 주라고 했었다. 그때는 '갑자기 웬 메일이지?' 했는지 그 의미를 이제 알았다.메일로 종종 안부를 전할까 싶다가도 학부모인 내가 보내는 메일이그녀의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미국은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시급이 3만 원이 넘는다. 인건비가 워낙 높은 나라인데 인플레이션, 그리고 어려운 일을 싼 가격에 하지 않으려는 영민한 20대의 사회 분위기가 맞물려 시급이높아졌다. 하지만 미국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의 월급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다. ESL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월급이 짜서 요즘 새로운 선생님을 구하기 힘들어. 그래서 수업이 너무 많아져서 지치네."
하물며 어린이집 교사의 업무 강도는 ESL 선생님과 비교도 안되게 세다. 아이 하원 때 본 어린이집 선생님 모습 대부분은 2살 정도 되는 아이의 엉덩이를 닦아주는 일을 하고 계셨다. 한마디로 궂은일이다. 선생님의 희생정신이 없으면 이 직업은 미국에서 도무지 존재할 수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조금 이상했던 지난 일정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공지한 학부모 상담 일정은 11월 중순인데 갑자기 10월 초에 상담을 하자고 해서 이상했었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나와 내 아이에게 충분한 노력을 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주에 선생님 생일이 있었다. 미국 문화를 몰라 고민하다가 적당한 선물을 사고 카드를 썼었다. 그 덕분에 마음의 무게를 그나마 조금덜었다. 카드에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나름대로 적었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선생님이 아이를 안고 찍은 셀카를 보고 '내가 드린 생일 선물이 마음에 드신건가?'라고 계산적으로 생각했다. 다시 사진을 보니 선생님 눈가가 촉촉하다. 마지막 인사를 해주신 것이다.
미국 생활이 이래서 싫다. 미국에 있는 내 삶은 땅에서 2m 정도는 붕 뜬 것 같다. 실제 남의 집에 월세로 살긴 하지만, 전형적으로 그냥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다. 타의든 자의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미국에 살면서 막연하게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감정이 든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실수도 하고 그 무엇과도 제대로 된상호작용을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기분이다. 선생님과 사람다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사람다운 마지막 인사는 무엇일까? 하원 때 적어도 '선생님 고마웠어요.' 이 말 한마디이다. 그 말 한마디, 그 말을 못 했다. 사실 선생님 입장에서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일 수 있는 사소한 말, 그 말을 건넴으로써 비로소 나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건데...
한국에서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엄마, 아빠, 동생, 오래된 친구들, 익숙한 거리, 좋아하는 장소로 가서 위로받는다.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 삶이 너무 외롭다. 사실 '외롭다'는 말로 대체할 수 없는 무겁게 가라앉는 허망하고 슬픈 감정이 있다.
그런 나에게 어린이집 선생님의 선량한 마음이 닿았다. 깡말랐던 그녀, 어설픈 내 영어를 엄마 미소로 들어주던 그녀가 나와 내 아이를 향해 따뜻한 표정 짓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아이가 등원할 때 화사한 미소로 아이를 안아주던 그녀 덕분에 아이 반 교실은 항상 아늑해 보였다.
선생님으로서 아이와 그 부모에게 온전히 마음을 썼던, 미국 어딘가에 있을,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의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