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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ct Code
Oct 30. 2023
3. 일이 그립진 않아? (1)
한국 가면 바로 복직이라는 공포와 축복
미국생활 중 다른 수식어로는 도저히 포장이 안 되는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나를 종종 구원해 준 건 다름 아닌 더 큰 불행이다. 한국 가면 바로 복직이라는 사실이다. 내 소중한 일터를 불행이라고 퉁치자는 건 아니다. 단지 직장 생활하면 전에 겪었던 악몽 같던 일들을 (거의) 필연적으로 다시 겪어야 하는 걸 알기에 미리 겁먹고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의 더러움을 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은 심지어 나름 평범한 날에도 잔잔하게 괴로웠다. 대부분 저녁 도저히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잠들기 힘들었다. 왜 부모님은 건물주가 아닌가부터 노예의 삶에 대한 상념 및 냉혹한 자본주의 비판 및 태어남을 당한 절망 등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정신이 피폐해지고 어지러워졌기에 차리리 눈이 저절로 감길 때까지 유튜브를 보는 편이 좋았다. 심리에 관한 것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것 혹은 회사 생활에서 살아남는 법 등 내일을 버티기 위해 진통제 같은 영상들을 봤다. 그런 영상들의 약발이 떨어지면 웃긴 영상이나 ASMR을 듣기도 했다.
6년간 직장에서 일하면서 일 년이 적어도 1번에서 n번 가해자들이 내 마음과 일상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사건들이 터졌다. 그럴 때면 내 내면은 1986년 체르노빌처럼 변했다. 그 시기는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라는 문장만이 나와 통하는 진짜 친구였고, 사건의 가해자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고통받는 꿈을 꾼 아침의 통쾌함만이 현실적인 진짜 위로가 되었다.
아직도 직장생활에 관한 나의 최대 의문은 '원자폭탄급 사건이 벌어지는 날,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파괴하지 않을 수 있을까'이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주체는 '나'이고 파괴되지 않아야 할 존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고약하게도 난 스트레스에 피폭되면 몇 없는 내 사람들을 괴롭혔다. 예민함과 짜증은 브레이크가 없었고 우울과 괴로움을 기어이 그들에게까지 전염시켜서 도리어 나에게 반납될 때까지 꼴사납게 굴었다. "야! 이제 그만 좀 해!"라는 사나운 소리를 듣거나 소중한 사람들에 나 때문에 괴로워서 눈물을 흘릴 때 겨우 무자비한 악행을 멈출 제정신이 들었다. 적다 보니 너무 사악하다. 이건 내 머리를 스스로 때려서라도 당장 고쳐야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빌런들은 매 해 새롭고 신선하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기에 하나하나 '주옥'같고 다채로운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고통은 정도가 비슷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날벼락같은 이들이 주는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짧은 미국에서의 삶에서 해답을 찾아보려고 애썼는데 답을 못 찾겠다. 미국에서 겪은 각각의 사례에 대해서는 나름 해결책을 찾으며 씩씩한 실존주의자처럼 살고 있기에 이 골칫덩어리 문제도 어찌어찌 적용해서 해결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미래에 벌어질 내 빌런들과 싸움에서 이길 해결책은 생각나지 않는다. 빌런들은 평범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디테일한 악랄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수능○○ 문제풀이 공략법처럼 각종 빌런 퇴치법 같은 게 나오면 좋겠다.
일이 그립진 않아?(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