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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trict Code Oct 30. 2023

4. 미국에서 영어는 늘었어? (1)

열등감과 ESL 영어수업

아무도 시킨 적 없는 급발진 자기소개를 하자면(예고 후 바로 투척 예정) 나란 인간은 대부분의 상황에 여유가 없었고 머리가 둔하고 요령이 없어서 남과 비슷하게 노력하면 항상 뒤처졌다. 그런 내가 짠했는지 학창 시절에 엄마는 내 사주를 점쟁이에게 물었다. 점쟁이의 대답은 은은하게 절망적이었다.  


"남들이 50%의 노력으로 어떤 일이 이룰 때 당신의 아이는 노력 100%를 해야 합니다."


다른 요행은 꿈도 꾸지 말고 무언가를 결과로 얻고 싶으면 넌 닥치고 그것만 죽어라 파야 남들 절반은 한다는 뜻이다. 통상 적용되는 평범한 문장 같으면서도 딸의 인생이 1%의 지름길이라도 있는 꽃밭이길 바 어느 엄마의 희망사항을 너무 쉽게 밟아버린 배려 없는 말 같기도 하다. 그걸 곧이곧대로 나에게 전달한 엄마의 약간의 무심함덕분에 어린 나는 충격을 받을 새도 없이 스스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 약간은 경쾌하게 낙인찍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어쩐지...'라며 그동안 아등바등 노력해도 항상 미지근했던 결과들이 간단히 정리되는 간결함도 편했다.


점쟁이의 말이 나비효과가 된 걸까 10대와 20대 대부분 무얼 하든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모는 일에 익숙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끝'이라는 조급함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학교에서 만났던 '외국에 살다 온 친구들'은 그래서 여러 의미로 특별하게 보였다. 자주 웃는 그들은 나보다 항상 여유 있어 보였다. (실제로 대부분 패밀리 머니 덕에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나와 다르게 묘하게 '이지모드(easy mode)'로 보였는데 그 근거는 그들에겐 당시 내가 겪고 있던 삶의 자잘한 어려움 따위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과 대화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들은 누구와도 쉽게 대화하고 친해졌다. 혹은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 적당한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웠는데 그들은 발표할 때마다 당당해 보였다. 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을 멀리서 가까이서 았다. 그러면서 어린 마음은 내면 구석에 '그들'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마음껏 점거하도록 허락했다. 그런 마음 상황을 들키는 일은 자존심의 사형선고였 그런 부류의 친구는 나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친해진 적 없다.


성인이 돼서는 외국에 살아 본 사람들만 가진 '외국티'가 없어서 내 삶이 이렇게 여유가 없고 팍팍한 건지 가끔 현실을 비약적으로 분석한 적도 있다. 곰곰이 생각하다 그 외국티는 역시 영어말하기에 두려움이 없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땅콩 줄기를 들면 땅콩이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는 것처럼 그들의 영어말하기 능력은 잘 자란 땅콩 줄기 같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약속했고, 미국 생활의 목표 중 하나는 'ESL영어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영어 꽤나 하는 그 준거 집단'에 머리라도 일단 들이밀어 대강 끼여서 한 자리 자치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보겠다고 수강 후기 검색도 하고 미국 ESL 사이트도 들락날락했는데 그때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미국에 와서는 정착을 위해 처리할 일이 너무 산더미처럼 많았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못하는 인간인 나로서는 ESL 수강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 일종의 처리해야 업무처럼 약간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의지가 흐물 해질 무렵 식당에서 주문할 때 직원의 말이 여러 차례 들리지 않았고 인터넷 설치 및 각종 생활 제반을 꾸리기 위해 영어로 대화할 때마다 상대방의 영어가 외계어로 들리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적잖게 당황했다. 이렇게 살다 간 계속 바보멍청이처럼 소외되겠다 싶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자 온 거지 혼자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무엇보다 나를 열받게 만드는 일이 있다. 바로 미국 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 신청, 문의, 예약 등을 위해 전화를 할 때마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장난 전화라 느꼈는지, 업무의 비효율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짧은 영어로 버벅대는 내 말을 자르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툭 끊어버리는 일이다. 처음엔 실수인가 생각했지만 전화 상대가 달라도 그 양상은 비슷했으므로 그건 고의임을 알 수 있었다. 전화 씹힘을 당할 때마다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차곡차곡 쌓이자 다시 ESL 수업을 들을 자세가 장전되었다. 신청 방법은 구글에 free esl class near me 검색한 후 사이트에 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고 신청 버튼을 누르면 된다. 내가 사는 곳에는 대학교에서 하는 수업과 도서관에서 무료 봉사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수업이 대표적이었다. 의욕이 활활 타오르던 나는 두 수업 다 신청했다. 미국은 약간의 수고를 하면 무료로 영어를 배울 환경이 잘되어 있는 나라이다. 워낙 유명한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료이다 보니 강의 당 학생 수도 많고(약 13명~20명) 수준도 달라서 나에게 딱 맞는 과외식 수업은 아니라는 한계는 있다. 그리고 만약 영어 수준이 오른다면 이런 무료 수업만으로는 실력향상이 불가하고 따로 돈을 지불하고 학문적인 영어를 배워야 한다.


대학과 연계된 ESL를 수강할 때 내가 처한 현실적인 제약으로 대면이 아닌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그래서 실제 원어민을 만나서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과 다르게 태블릿을 켜서 선생님 수업을 듣는 약간 유튜브 강의 같은 그런 가벼운 느낌으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는 미국 선생님의 말이 거의 안 들렸다. 현지 수준의 리스닝이 거의 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발 저를 시키지 말아 주세요...'를 마음속으로 외치는 스피킹 수업을 왜 듣는지 알 수 없는 어이없는 학생이었는데, 그러다가 2시간 동안 겨우 한 마디만 했을 때는 좀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때는 차라리 유튜브 영어 강의를 듣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대학 연계 ESL은 출결이 좋아야 다음 학기 등록이 가능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수업에 결석할 수는 없었다.


1년 동안 결석 없이 끈질기게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안내한 레벨테스트를 받았는데 점수가 높아서 1년 만에 ESL 수업을 졸업하였다. 정확히는 ESL 수준을 넘어서는 영어 공부가 필요한 단계로 들어섰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건 그거고, 그 무엇보다 어떤 하나의 단계를 끝냈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누군가에는 별거 아닌 영어 수업이겠지만 나에겐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 여정을 차분히 마치게 되어 기뻤고 이 모든 과정이 무료였다는 게 기분 째진다. 그리고 그때쯤부터 신기하게 더 이상 전화로 일을 처리할 때 상대방이 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지 않게 되었다.



도서관 ESL을 들었던 라운드 락 도서관 모습



미국에서 영어는 늘었어?(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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