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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trict Code Oct 30. 2023

3. 일이 그립진 않아? (2)

한국 가면 바로 복직이라는 공포와 축복

다만, 일 나에게 요구하는 가치에 더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미국에서 직업을 가지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한국에서 가졌던 객관적 위치, 직업, 사회적 업적, 스펙은 잊고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쉽게 말해 내가 한국에서 취득한 자격증은 미국 취업시장에서 씨알도 안 먹힌다. 직업학교에서 입학해서 직업 교육을 받고 현지에서 실무경험을 쌓거나, 전공분야를 다시 대학교에서 공부해서 미국에서 발급해 주는 학위나 자격증을 다시 따야 한다.


따라서 나는 미국 취업시장에서 객관적인 경력 하나 없는 무스펙다. 그러다 보니 직업인으로 한국에서 가졌던 영향력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영향력이라서 해서 별건 아니고 여러 소소한 업무들인데 그중에서 가장 그리운 건 직장동료와 학생에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영향력이다. 그게 뭐 또 영향력씩이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 진짜 아무 영향력 없는 삶을 살다 보니 그것은 비록 귀여운 수준의 규모지만 영향력이 맞다.


자식이 성인이 된 후 '지나고 보니 어린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았구나. 시간을 돌린다면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한탄하는 부모의 깨달음과 비슷한 결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일터에서 내 말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소수의 그룹에겐 내 말의 영향력은 하루 중 만난 '기분 좋음'이거나 웃음이 될 수 있고 과장을 보태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학창 시절에 만난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에 뿌리내린 순간들이 있다.


중학교 때 부반장이 중간고사 영어 시험의 답안 마킹을 밀려 썼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처참한 점수를 확인한 친구는 다음 수업 시에 계속 울먹다. 그 친구를 보고 영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난 수능에서 답을 밀려 쓴 적이 있어. 그래서 나는 1년 재수하고 대학을 가야 했어. 지금 이런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야. 오히려  실수로 배우면 돼. 그러면 중요한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수 있어. 내가 고생한 1년을 아낄 수 있다는 말이야."


선생님이 담담한 고백이 주는 울림 때문에 교실순간 진지해졌다. 선생님의 그 말은 학창 시절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나를 다독여주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문득 이런 말을 하셨다.


"얘들아, 나는 이렇게 너희들 앞에서 서 있는 이 순간이 너무 감사. 너희들이 를 학교 밖에서 다면 그냥 지나가는 아줌마잖아. 그런데 너희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주면서 수업 듣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벅차올라. 나에게 이런 기쁨을 줘서 정말 고마워."


그 선생님 다른 일을 하시다가 교직으로 이직하신 분이셨는데 이런 식으로 학생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읊어주던 선생님은 처음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그 선생님 수업 묘하게 항상 생기가 돌았던 이유를 그 감사인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저런 마음으로 일을 하면 참 행복하겠다는 교훈을 주는 말이었다.


고3에 내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고2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서 상담해 주시던 일도 생각난다. 요지는 '너는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학생인데 왜 지금 방황을 하니,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등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던 애정 어린 어른의 언어였다. 그 선생님은 당시 나의 담임도 아니었고 퇴근 시간이 넘은  늦은 저녁에 시간을 빼서 인적이 드문 곳에서(월권이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나와 상담했다는 점에서 '진짜 진심'이었다. 비록 대학 입시에 적당히 실패했지만 살면서 스스로 가능성이 의심될 때면 따뜻한 그 말에 기대곤 했다. 나는 평생 더 잘할 수 있는 인간인 것이다.


한 인간에 기억에 남는 문장을 선물한 선생님들은 본인들의 영향력을 가치 있는 곳에  분들이다. 일터에서 가치라는 건 식당 주인이 님들에게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 택배기사가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의 마음을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뜻하지만 "여러분,  A는 A입니다!"라 외치는 진부한 공익광고처럼 식상하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 뻔 가치를 막상 상에서 실천하며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리고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안다. 그래서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 특별하고 대단해 보인다.


어차피 일을 할 거라면 가치를 꽉 붙들고 일하고 싶다. 그게 주축이 되어 일한다면 견디기 힘든 직장 생활도 '대체로 의미 있다'라고 퉁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아니 비록 지옥에 있더라도 바들바들 어설프게라도 가치를 두 손에 꽉 쥐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100년 정도(도 못) 살 거라면 선한 가치를 실현하려 애써봤던 인간다운 인간이고 싶어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은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얻게 된다'라고 했다. 습관성 다짐러는 실천하자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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