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닐 때 미술시간에 집을 그릴 때면 내가 사는 아파트를 그린 게 아니라 세모지붕이 있는 네모반듯한 과자집 같은 주택을 그렸다. 그 집에는 항상 한 그루의 나무와 지그재그 풀도 함께였다. 한마디로 어릴 적 미국 만화 영화에 흔히 보이는 싱글하우스였다.
그 그림이 예언이 된 건지 로망이 된 건지지금 그런 집에서 살고 있다.내 월세집은 미드에 흔히 보이는 마당이 있는 싱글하우스이다.
월세집은 이렇게 생긴 싱글하우스이다.
이 싱글하우스를 월세로 구하기까지 과정을 소개하려 한다. 미국은 정말 넓어서 텍사스의 작은 동네에 해당되는 '하나의 사례'이니 참고만 하시면 좋겠다.
미국에서 집을 구할 때는 미국에 먼저 살고 있는 지인이 있지 않는 한, 리얼터(부동산 중개인)와 함께 집을 봐야 한다.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 초짜가 리얼터를 대동하지 않으면 미국 부동산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야 하는 게 너무 어렵다.
우리는 한국어가 가능하고 한국인의 취향과 미국 동네 사정에 빠삭한 한국인 리얼터와 함께 월세집을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질로우(https://www.zillow.com/) 같은 대형 미국 부동산 사이트를 꼼꼼히 보고 비교했다.
미국에서 집을 구하다 보면 결국엔한국에서 집을 구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재밌다.지구촌 어디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거주지는 다 비슷하다는 의미이다. 평범한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인 '집'은 가격과 그 가치(살기 편한 정도)가 기가 막히게 비례한다.
한마디로 대부분 비싼 집이모든 면에서 좋다는 말이다. 좋은 조건을 충족하는 멋진 집에 살고 싶다면? 냅다 근처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곳에 살면 대략 정답이다. 정답을 알아도 돈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들은발품을 팔면서 가격대비 더 나은 집을 골라야 하니 수고롭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비싼 집, 비싼 동네는좋은 학군을 말한다. (참고로 집 바로 앞에 중학교가 있어도 그 중학교로 아이를 보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그 집이 어디 학군에 속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학군은 거주하는 집의 거리와 무조건 비례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에게는 큰 한인마트, 좋은 골프장이 가까운 곳도 인기가 많다. 그런 곳에 살면 한국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들보다 우선되는 건 역시 학군이다.
리얼터와 함께 집을 구하다 보면물론 한국과는 다른미국집의 특이성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것들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집 내부에 깔아진 카펫이다. 이 카펫의 장점은 겨울에 보온이 된다는 점이고 단점은 위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층 집이다. 장점은 평범한 미국인이 전형적으로 선호하는 형태라는 점이며 그 이유는 가족 구성원 간에 사생활을 분리할 수 있다.단점은 개방감이 부족하다. 1층에서 볼 때 탁 트이는 넓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은 월세 주인이 세입자가 가진 조건들이 적힌 신청서를 받고 원하는 세입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세입자는 월셋집 계약을 위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예시로 내가 거주한 미국 동네의 월세집의 경우, 월세비의 약 3배가 되는 돈을 매달 임금으로 받고 있다는 걸 증빙해야 했다. 혹은 신용을 보기 위해 신용카드를 발급했는지를 보기도 한다. 어떤 집주인은 세입자의 재산을 확인할 용도로 통장의 잔액이 찍힌 종이를 달라고 했다. 그 집은 맘에 들었지만 집주인이 까탈스러워 보여 포기했다.
월셋집 관리는 집주인이 직접 하는 경우와 전문 회사가 대리관리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 집주인의 성향에 따라 월세살이가 괴로울 수도 편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주기적으로 업체에서 집주인을 위한 보고용 자료를 만들기 위해 세입자의 집에 찾아오긴 하지만 일정 수준으로 집이 관리되는 느낌이 있다.
우리가 본 동네의 경우 대체로 새로 지어진 집들은 내부에 카펫이 없었고 5성급 호텔급으로 좋은 집이 많았다. 대신 편의 시설들과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반면 오래된 집들은 여러 문화 시설을 이용할 접근성이 좋지만 내부가 낡고 벌레와의 전쟁이 예상되었다.
참고로 싱글하우스, 아파트의 경우 자체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경우가 있다. 수영장, 놀이터 등 입주민 공동으로 이용 가능한 문화 시설이라 당연히 좋지만 이는 월세가 비싸지는 단점이 되기도 하다. (참고로 1회 사용료를 지불하면 외부인도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시설도 있다.)
미국에서는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집 외부에 빨래는 너는 것이 불가하니 건조기가 필수이다. 마찬가지로 집 마당의 잔디 관리도 필수이다. 만약 잔디를 방치한 경우 몇몇 커뮤니티 및 HOA에서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따라서 월세집을 알아볼 때 월세비에 잔디관리 비용이 포함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잔디 관리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집을 볼 때 마당의 잔디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잔디 관리가 어려울수록 추가 관리 비용 발생한다. 모든 조건이 좋은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집일 경우 잔디 관리가 힘든 집일 수 있다.아는 사람 중에는 아예 잔디가 없는 싱글하우스를 구하기도 했다.
잔디 관리를 업체에 맡기는 경우, 가격대는 잔디 종류와 마당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2주 1~2회 방문(조정 가능)을 하며 1회 방문당 $30~$80가 든다. 최저 가격은 잔디를 깎기만 해주는 것이고 최고가격은 잡초를 제거해 주는 등 전체적인 관리를 포함한다.
우리는 잔디 길이만 깎는 최저가로 관리를 신청했다. 2주에 1번씩 관리했는데 한 달에 약 10만 원이 꼬박꼬박 나갔다. 물을 주고 잡초 뽑는 일을 제외한 관리비이다. 결국 나중에는 월마트에서 잔디 깎는 기계를 사서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마당에 있는 잔디를 자의 반 타의 반 관리하다 보니마당 있는 싱글하우스를 유지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다. 잡초는 왜 이리 억세고 빨리 자라는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주기적으로 낯선 잡초들도 새롭게 생겨났다. 잡초를 뽑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손과 허리를 다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당 한번 관리하겠다고 내 몸이 혹사되는 뭔가 주객전도된 상황이 분명했다.
잔디인가 싶은 뒷마당 모습
알고 보면 다 잡초이다.
잡초와의 전쟁이다.
잔디 관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눈을 감으면 어제 뽑은 잡초가 악몽처럼 생생하게 보이는 날도 있었고, 미국 동네를 산책해도 "이 집은 잔디관리를 잘했구나, 이 집은 잡초가 장난 아니다" 등의 집 자체의 미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당의 잔디 상태라는 지엽적인 부분만 크게 보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한국의 한 스타강사가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강연하는 이 순간이 저에게 가장 재밌고 쉽습니다. 이 강연을 준비하는 긴 과정이 가장 하기 싫고 힘듭니다."
사진을 찍으면 언뜻 멋지게 나오는 내 미국 월세집의 고고함을 위해 (혹은 옆집에게 신고당하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잔디를 관리하며 잡초를 뽑아야 한다. 허름한 옷을 입고 쪼그려 앉아 마당의 흙과 대면한다. 조우하기 싫은 각종 벌레들도 만날 각오를 하면서(아 맞다, 마당에 불개미약도 뿌려야 하고 가끔 벌집도 제거해야 한다) 잡초를 힘껏 당긴다. 질긴 놈들은 호미로 툭툭 파고 긁어서 뿌리까지 완벽히 없애야 해억척스러움까지 요구한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주택에 살 생각은 꿈도 안 꾼다. 낭만, 로망에 후드려 맞는 중이다.미국의 미드에 나오는 그런 집의 감성과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로움은 하나도 안 멋있다.
그러면서도 주기적으로 마당을 포함한 집 사진을 찍고 심심할 때마다 보면서 미국 싱글하우스에 사는 호사를 상기한다. 왜냐면 이 집이 살 수 있는 기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가면 다시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이 지긋지긋한 잡초와의 전쟁도 분명히 추억이 될 것을 안다. 끝을 알고 있는 고통은 그래서 견딜만하다. 그리고 잡초는 지긋지긋해도 미국에서 이런 집에 살고 있다는 건 여전히 나에겐 영광이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기어이 발을 내딛고 새로운 일상을 사는 건 나에겐 큰 경험이다. 그리그 그 경험은 남에게 내세울 만한 훈장도 아니고 오히려 자랑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더 없어 보여 꼴이 우스워지는 걸 안다.살면서 수도 없이 밤에 이불킥을 하면서 단련된 다리 근육이 알려준 교훈이다. 그래서 남들이 없는 고요한 시간에 내가 임명한 작지만 소중한 영광들이 흐트러지지 않게 가끔 마음 한 구석에 진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