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00에서 인종차별 당했습니다"라는 인기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썸네일이 주는 엄청난 어그로에 클릭하고 말았는데 보고 나니 조금 안타까웠다. 영상 속 그들은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나라 문화를 몰랐던 것이다.
팔각형 빨간 표지판에는 여기서 기다려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영상 속 나라는 유럽의 나라 중 하나였는데 유럽을 포함한 미국에서는 한국과 다른 식당 문화가 있다. 그건 식당 앞에 "여기서 웨이팅 하라는 표시(ex. Wait here)"가 있을 시 가게 안으로 무작정 들어가지 말고 그 표시 앞에서 대기 후 종업원이 오면 인사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좌석에 앉게 되면 음식을 주문하거나 무언가를 요청할 때, 계산할 때 등 직원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직원을 큰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혹은 직원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손을 약간 들어 의사를 표현하거나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게 기본적인 예의이다.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은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게 안을 무작정 들어가서 안내되지 않은 테이블에 덜컥 앉아버리고 직원들을 큰소리로 부르고, 직원 옷을 잡아당기면서 주문을 하는 한국인을 식당 직원이 다른 손님을 대하듯이 친절하게 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무례한 손님은 진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간혹 천사 같은 직원들은 그들도 이해하고 웃어주겠지만 그런 도덕성을 매번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이렇게 졸지에 진상이 돼버린 한국인의 사례가 쌓일수록 그 식당의 종업원에게는 '한국인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이 확고해진다. 그게 결국 '한국인 싫어'와 같은 인종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그 혐오는 쉽게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그러니 외국에 나가면 개개인이 '한국대표'의 마인드로 지내야 한다는 말이 근거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 식당의 경우 종업원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뿐 절대 '왕을 대접하는 종업원 나부랭이'가 아니다. 식당에 초대받았다는 기분으로 한국에서 보다 조금은 더 예민하게 매너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 가게에서 소란을 피울 경우 가게 사장은 손님에게 나가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거부할 시에 경찰이 온다. 진짜로 문화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찐' 자본주의로 인해 한국인이 당할 수 있는 불평등도 있다. 쉽게 말해 그 가게에 그동안 온 한국인들이 종업원에게 팁을 적게 줬다면 한국인인 나는 가게 내부에서 덜 선호되는 좌석에 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슬퍼마시라. 돈 많은 단골 미국 아저씨들이 주는 엄청난 팁을 생각하면 내가 종업원이어도 매번 공정하기 힘들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사실 자본주의에서 돈을 더 많은 주는 사람에게 좋은 좌석을 주는 것이 세속적인 의미의 '공정'일 수도 있다.
이 두 사례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종차별로 보이는 행동이 사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인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몰라서, 팁을 적게 내서이다.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어딜 가나 원래 인성이 더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는 무례하고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이 있다.
영어 수업 중 알게 된 필리핀 친구가 미국인과 일하면서 겪은 인종차별이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일터에서 한 미국인이 본인과 친해지기도 전에 자신보고 "몽키몽키, 너 원숭이 닮았어"라고 대놓고 놀렸다고 했다. 그녀는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느꼈고 순간 열받았을 뿐만 아니라 곱씹을수록 기분이 더럽고 며칠간 잠도 안 왔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우리가 흔하게 "인종차별"받았다고 느끼는 사례이다. 그런데 그런 수준 낮은 인간들의 언행을 보고 있자니 너무 유치한 거다. 그녀에게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사례에서 느껴지듯 '무개념 한 발언을 하는 그들'은 인종에 대한 어떤 신념이나 의식을 갖고, 우리가 '한국인'이어서 그따위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혹은 만만한 사람)에게 기회만 되면 되바라지게 행동하는, 배움이 짧은 인간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유년기에 할 법한 못된 장난 수준으로 남을 괴롭히는 인간은 어디서나 일정 비율로 있다. 그런 사람에게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는 '별 이상한 놈 다 보네(속으로 심한 욕)'하면서 기분 나쁜 일을 최대한 잊어버려야 한다. 그 사람에게는 우리의 감정을 소비하는 시간 자체가 아깝기 때문이다.그들이 주변인이라면 그 기회에 조용히 손절할 필요도 있다.
그러니 혹시 외국에서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해 답 없는 우울감에 빠지거나 힘없는 국가의 국민이라며 자책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런데 진짜 인종 차별은 없을까? 진짜?
인종차별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인종적 편견 때문에 특정한 인종에게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이라 나온다. 그 정도로 과격한 일이 미국에 살면서 있었냐고 물어보면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국에서 '미국 백인 남자', '미국 백인 여자'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는 완벽하게 '외국인'이다.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생김새가 비슷해서 적당히 말 안 하면 묻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누가 봐도 동양인이다. 처음에는 동양인인 걸 들키기 싫어서 내 또래 미국여자들이 입는 옷 스타일을 비슷하게 입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니 여기서 평생 살아도 나는 누가 봐도 한눈에 동양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딜 가든 외국인 대우를 받는다.
이 대우는 양면성이 있다.
어떨 때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끔 우리 사정을 적당히 어물쩍 봐주는 경우도 있다. 주변 사람에게 들은 팁인데 사소한 일로 경찰에게 걸렸을 경우 어눌하게 영어를 하면서 봐달라고 하면 경찰이 한숨 쉬면서 이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터 조심하라는 경고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 그 혜택(?)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반면에 경쟁이 치열한 부분, 즉 대학 입학이나 취업, 혹은 여러 상황에서 생기는 미묘하게 좋은 기회나 대우들은 외국인에겐 '은밀하게' 혹은 자국민 중심을 내세우며 '대놓고' 박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미국 백인들이 먼저 좋은 기회를 차지한 후 남은 자리를 가지고 다른 인종들끼리 경쟁하는 듯하다.이 지점에서 넓은 의미의 인종차별을 실감한다.그런데 자국민부터 챙기겠다는 사회가 비난받아야 하는지의구심도 든다.(물론 엄청난 노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켜서 인간 승리를 이루는 이민자들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대우를 넘어서는 심각한 인종차별로 신체적 위협을 받거나 지속적인 언어폭력, 금전적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드문 경우이긴 하다. 그래도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운 좋게 안 당한 것뿐이다.
그런 경우에는 인종차별을 당한 사건에 대한 자료 즉 날짜, 시간, 장소, 목격자 및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모든 증거를 최대한 기록해 둔다.
그 증거를 가지고 경찰서(911) 혹은 살고 있는 주, 도시에 있는 자체 인권 위원회 또는 부서 쪽으로 연락 (ex, 뉴욕에 산다면 뉴욕 인권위원회를 구글에 검색) 하여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밖에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명예훼손방지연맹(ADL)이나, 인종차별이 고용이나 민권침해와 관련된 경우 법무부(DOJ)나 고용기회균등위원회(EEOC)와 같은 연방기관에 제소를 할 수 있다. 법률사건으로 판단되는 경우 민권 또는 차별사건 전문 변호사와 상담해서 처리할 수도 있다.
한국에 살던 사람이 미국에서 사는 건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다. 외국에 사는 것에 환상이나 꿈이 있다면 '외국인으로 사는 삶'도 한 번은 고찰해야 한다. 특히나 한 번도 외국인으로 살았던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사는 자유로움'만 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도 있다.
미국에서는 어디서나 한국인은 주류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유색인종'이라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내 존재 자체'로 항상 주류에서 밀려나는 경험은 서글프고 외롭다. 그리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있을 때면 은근한 거리감도 자주 느낀다. 그 이유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어색하고 덜 편하기 때문인 것도 안다.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은 한, 그들이 아쉬운 위치에 있지 않은 한 그들이 자발적으로 굳이 동양인에게 질문하고 소통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인에게는 누가 봐도 미국인 같은 미국인이 대하기 편하다. 내가 원해서 미국에 살고자 왔으니 이런 경험들은 쓰지만 삼키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미국에서 잠깐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무거운(미국에서 약 1820년부터 시작된 인종차별이 어찌 무겁지 않으리) '인종차별'을 주제로 적은 다소 가벼운 언급이다.
나처럼 일시적으로 외국에 머무는 거라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인종차별을 대하는 것이 적응에 도움이 된다. 평생 그곳에 정착할 게 아니라면 한정된 시간 동안 새로운 문화의 즐겁고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 일에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답 없는 걱정과 괜한 우울감으로 마음에 곰팡이를 키울 필요는 없다.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녀는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나와 다르게 미국에 정착한 미국인이다. 그녀는 한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다.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미국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인종차별이 없는 낙원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에 사는 나에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한국에서 외국인을 보면 한국 사람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가? 한치의 다름도 없이?
당신은 한국에 사는 동남아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의 삶의 난이도, 사회적 인식이 같다고 보는가?
우리는 해외에서 당하는 한국인의 인종차별 경험에는 분노하면서 당장 우리 옆에 있는 외국인에게 어떤 시선을 주고 있는가.
국가인권위원회의 '2022년 인권의식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이주민 인권이 존중된다는 응답은 36.2%로 다른 사회적 약자·소수자(여성,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리고 국민 2명 중 1명(54.1%)은 우리 사회가 이주민에 대해 혐오 또는 차별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차별 정도가 심하다는 응답은 31.9%로 상대적으로 차별의 심각도에 대한 인식은 낮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이주민을 차별하면서 그 차별이 심각하다고 인식을 못하는 중이다.
어느 날 미국에서 처음 보는 미국인 아주머니와 스몰톡을 했다.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미국에 적응하는 거 힘들지? 내 동생도 태국에 사는데 처음에 많이 고생했어. 너도 참 힘들겠다. 나도 알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미국에서 싸늘한 시선을 느끼거나 삭막함을 느낄 때마다 일종의 마법의 주문처럼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미국에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한 명의 미국인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겐 미국의 따뜻한 면이 되었다.
한국에서 보는 외국인은 나에게 타인이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타인이 맞다.
그런데 타인에게 조금 다정하면 안 되나.
소란스럽지 않게 약간의 기회가 생기면 따뜻한 말을 건넬 줄 아는 그 미국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마 나에게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것이다. 그녀의 주변은 항상 기분 좋은 온기가 가득할 것이다. 친절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가 준 온기를 마음속에 잘 두고 있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그 온기가 힘을 줄 것이다.
다시 이민진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문화적 시민성을 가지면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정한 답을 만들어) 이것이 미국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유일하게 한국인이 되는 방법이라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중략) 좁게 생각하는 것을 그만해야 한다. 그건 어떤 목적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전 세계 경제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면 환경은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다. 어떻게 국경을 넘어 가장 똑똑하고 좋은 팀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국가의 자존심 문제가 분노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참고 기사
-'우리 사회는 아직 이주민에게 차별적' 54%... 이주민과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국가인권위원회 박윤미 주무관, 한국일보 2022.12.03
* 참고 영상
-파친코 이민진 작가가 말하는 [뉴욕, 일본 이민자 문화]의 특징 조승연의 탐구생활, 2023.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