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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Jan 12. 2018

돌멩이만큼

네가 말했지_9

오늘도 남편과 투닥거렸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주말이면 꼭 한 번씩 서로를 할퀴고 일요일 밤이 지나간다. 요즘은 말 안 듣는 두 녀석들을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달라 다툰다. 아빠가 몇 번 지적해도 석이 찬이는 안 자고 쿵쿵거리고 놀다 혼났다. 남편은 아들 그러니깐 자식이기에 앞서 ‘남자’ 아이라는 개념이 더 앞서는 것 같다. 딸아이였음 저랬을까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은 또 애들에게 심한 말을 해댄다.


“당신은 아무리 애들이 말 안 듣는다고 해도 뭐 그렇게까지 얘기해!”


정작 애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나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괜히 애들한테 빨리 자라며 불을 꺼버렸다.

석이가 말했다.

“엄마는 나 안 사랑하지?”


요즘 내가 조금만 화를 내거나 찬이에게 다정하게 굴면 이렇게 물어댔다. 지금 너를 안 사랑하는 건 아빠 같은데 왜 나한테 묻나 싶다. 아빠의 말이 왜 엄마를 화내게 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석이는 엄마가 또 냉랭하여진 게 자기가 미워 그런가 싶나 보다.


“아니야.. 사랑해”

“아니야. 엄마는 날 돌멩이만큼만 사랑하지? 우주만큼 아니고!”


아이의 사랑 투정이 오늘은 귀엽지 않다.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뜨끔했다. 혼자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아이가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들키지 않으려고, 덮으려 해도 아이 앞에선 투명 비닐을 덮었을 뿐인가. 남편이 미워지면 그를 닮은 석이도 갑자기 내 아이가 아닌 듯 느껴지곤 했다. 내 뱃속으로 난 아이가 낯설어 보일 때마다 차가운 슬픔이 뒤엉켜 괴로웠다. 미움의 낙엽, 슬픔의 낙엽, 낮은 자존감의 낙엽, 바닥에 깔린 검은 낙엽들이 찬 강풍에  휘몰아치며 이리저리 날리면 감당하기 힘든 밤을 보냈다. 그래 자자. 빨리 자고 일어나 하루가 내게 할당한 일들을 하면 이 마음도 괜찮아질 거야..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며 낙엽 하나 줍고 밥 차리며 하나 줍고 빨래를 게며 하나를 줍는다. 그렇게 다시 흩어진 낙엽들을  태워 버리지도 못하고 차곡차곡 내 맘 깊이 다시 쌓는다. 언젠가 그 낙엽들을 활활 다 태워버릴 뜨거운 불이 오길 기다리며.


석아, 작은 돌멩이 탑을 우주까지 쌓아 올리고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는 너무나 힘들구나.

널 사랑해 돌멩이만큼.

네 손안에 품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돌멩이만큼.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네가 원한다면 금방 잡을 수 있는 작은 돌멩이만큼.

지금 엄마의 사랑도 괜찮다면 조금만 기다려줘. 하룻밤 이틀 밤........ 열 밤......


2017.11.26  석이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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