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했지_12
오랜만에 아빠랑 함께 목욕한다며 석이가 먼저 욕조 안에 들어가 물놀이하고 있었다. 남편은 옷 벗기 전 세면대에서 찬이 똥 묻은 바지를 빨고 있었는데 석이가 아빠에게 물 튀기며 장난쳤나 보다. 남편이 “양말 다 젖어 잖아!” 하며 조금 큰소리를 내니 석이가 말했다.
“아빠도 어릴 때 그랬어!”
남편은 화를 못 내고 “그치, 아빠도 어릴 때 그랬지” 하고 꼬리를 내린다. 어린 사람 석이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기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석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것을 요구받을 때면 어김없이 자신의 한계를 내게 알려준다. “엄마 난 이거 아직 안 돼.” “나는 잘 못 참겠어.” “엄마 내가 한 살 더 형아가 되면 그때 할게” 지금 6살 석이는 동생이 있는 ‘형아’지만 어린 아이라 더 많이 놀아야 함을 당당히 요구한다. 더 많이 장난칠 권리가 있으며 더 많이 실수할 권리도 바란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늘 그 녀석의 권리가 그저 빨리 사라지길 바라며 채근한다. 때론 그 권리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라 여기며 버릇을 고쳐야 하는 부모의 권리로 되받는다.
석이는 지금 당당히 요구한다. 어린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해 달라고 말이다. 분명 엄마 아빠도 어릴 때 그랬으니 조금 더 나를 ‘넓은 이해의 방’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말이다.
귀엽고 작은 입으로 어린애 장난하듯 얘기해도 그 말속에 석이의 진심과 생각이 있다. 나는 그 녀석의 숨은 의미를 찾는 미로에서 출구를 늘 찾고 싶다.
2017년 석이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