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말했지_10
요즘 첫째 석이가 심심하다 놀아 달라를 입에 달고 다닌다. 동생 찬이랑 집에서 땀 흘리며 놀다가도 부엌에 있는 내게 오면 첫 마디가 “엄마 심심해. 놀아줘”이다. 뭐가 심심해 신나게 놀고 있으면서! 그리 답하고 설거지하고 방 닦고 요리하다 보면 석이의 놀아달라는 말은 그저 응석 정도로 넘길 수 있는 면죄부를 주었다. 엄마는 지금 심히 바쁘단다. 너를 먹이려 음식 준비 중이란다. 석이는 “엄마는 밥쟁이야!”하고 돌아선다.
석이가 올해 3월 첫 기관에 다니고 나와 함께하는 물리적 시간이 줄어들었다. 두 살 터울 동생 찬이 5살에 가까워지니 말동무, 놀이 동무가 되어 신나게 논다. 나와 깔깔 웃어대는 시간이 줄었다. 살을 맞대는 시간이 줄었다. 나는 자유부인이 되어 신났다. 둘이 노는 소음도 거슬리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오지 않고 둘이 잘 노니 나는 좋아 미친다. 이런 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유튜브를 본다. 잠시 내게 와 놀아 달라하면 귀찮아진다. 갑자기 생긴 나의 시간을 욕심냈다. 더 달라고. 침범하지 말아달라고.
석이가 폭발하고 말았다. 잠들기 전 갑자기 내게 화를 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재미없는 하루였어.”
“왜~너 오늘 찬이랑 키즈카페도 가고 팽이도 돌리고 만화도 보고 로봇 놀이도 했구먼. 재미가 없었어?”
“엄마가 하나도 안 놀아줬잖아!”
매일 같이 있으면 뭐하나. 나는 오늘 석이와 한 번도 놀아주지 못했다. 단 5분도! 오늘 하루를 되감기 해본다. 멀리서 찍힌 나의 모습을 돌려본다. 위험하게 놀지는 않는지 걱정될 때만 아이를 바라볼 뿐이다. 석이는 잘 놀다가도 내 곁에 와 안아달라 살을 비벼댔다. 내년에 7살인 녀석의 살가운 몸짓이 살짝 부담스럽다.
엄마 설거지하잖아. 거품 튀어. 석아 거실 가서 찬이랑 놀고 있어.
석이는 그런 엄마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별 섭섭함도 없이 다시 찬이 곁으로 간다. 하지만 어김없이 잠시 후 내 곁으로 돌아온다. 끊임없이 석이는 내게 신호를 보냈는데 나는 가볍게 귀를 닫았다.
“석아. 미안해. 내일은 꼭 같이 놀자. 숨바꼭질도 하고 우노 카드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석이와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내 지인이 자기 딸내미도 하루 종일 엄마는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며 투정 부리 길래
“그럼 엄마는 너랑 계속 뭘 했니?”하고 물으니
“엄마랑은 준비를 했지!”라고 답했단다.
유치원 갈 준비, 밥 먹을 준비, 씻을 준비, 잘 준비, 준비 준비... 늘 준비 중인 엄마...
준비할 때만 가장 아이에게 집중하는 엄마.
늘 함께 있는 건 엄마인데 오히려 놀아주는 사람은 잠깐 보는 아빠인 것 같다했다. 그녀는 요즘 다시 재취업준비로 마음고생 중이다. 우리 둘은 먼 산을 잠시 보다 조만간 술 한잔 하자며 이야기를 끝내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