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이응 Dec 26. 2017

늦은 미안

너가 말했지_3

아파트 앞 놀이터. 동갑내기 친구 하원이랑 그네 타며 놀다가 서로 빨간 색 의자 달린 그네를 타겠다고 실랑이를 버리다 그만 석이가 하원이 코를 때려 쌍코피가 터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석이가 고의로 했는지 우연히 팔에 부딪힌 건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쪽은 피가 나는 상황에 나는 석이 양팔을 붙잡고 감정이 앞서고 말았다. 차분한 말투는 애초부터 없었다. 왜 그랬는지도 묻지 않고 너도 놀랬지? 하고 감정을 읽어주지도 못했다. 백날 ‘감정코칭’이니 서천석 박사, 오은영 선생님 책 보면 뭐하나? “야! 너 그럼 어떡해!!”가 먼저 나가고 그 말 속 내 진심은 ‘너 엄마 창피하게 이게 뭐하는 짓임?’였다. 나의 격양된 목소리가 그 부끄러움과 엄마로서 당연히 훈육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대변하고 있었다. 한 쪽 눈으로 석이를 다른 한쪽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하원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해!”

“......”

  

이 녀석 나를 더 무안하게 만들었다.

“하원이 봐봐 피나잖아. 너가 쳐서 코피 나잖아. 어서 미안하다고 해야지!”

“.........”

  

석이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자존심 센 녀석인걸 알지만 이런 걸로 자존심 부릴 일인가? 아...하원이의 울음소리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데시벨이 더 올라갔다. 내 주위의 엄마들이 다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난 어째야 할까? 다시 책에서 배운대로 시도해봐야 하나?

‘석아 너도 놀랬지? 하원이 피가 많이 나네 많이 아프고 하원이도 놀랬겠다. 석이도 저 그네 타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근데 석아 일부러 그랬든 실수로 그랬든 친구가 아프니깐 위로해주자.’ 사실 나는 안다, 그때 어떤 말을 해줘야 했는지 어떤 반응을 해줘야 했는지. 석이를 안아주며 이런말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너 반성할 때 까지 저기 가 서있어! 미안하다는 말 하고 싶을 때까지 반성하고 있어!” 했다.

  

석이는 하원이가 울음을 그치고 다시 웃으며 뛰어 놀 때까지 홀로 입을 다물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하원이가 먼저 집에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내 자신에게도 창피하고 말았다. 이게 뭐냐~!!! 나에 대한 화가 갈 길을 잃고 또 석이에게 날아갔다.

“이리와! 봐봐 결국 하원이는 사과도 못 받고 집에 들어갔어! 정말 너 땜에 엄마가 속상하다!”

석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을 눌렀다.

“엄마 나 하원이한테 미안해..”

“너 그걸 왜 이제 애기해! 아까 하원이 앞에서 얘기하면 좋았잖아!”

“부끄러워서 그랬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창피만 생각한 난 석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그제야 석이를 끌어안았다. 석이만 늦은 게 아니었다.

나도 늦었다.

2015.9.24. 석이 4세

이전 11화 4살의 행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