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두 명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어쩌다 가끔 저녁에 만나 술 한 잔에 안주 3~4가지를 먹으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다. 이른 낮에는 오랜만에 모였다. 따뜻한 순두부찌개에 밑반찬으로 집밥을 대접했다. 역시 누가 차려주는 밥 이 제일 맛있다며 빈 그릇으로 화답해줬다. 술 한 잔이 없어도 4~5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커피 잔이 비워졌지만 아직 할 이야기를 다 비우지 못했다. 아쉽지만 일어날 시간이다, 아이들을 기관에서 찾아와야 하는 시간.
“아.. 가기 싫다”
“낮에 보는 건 별로인 것 같아. 밤에는 하루 마무리하고 가는 느낌도 있고 몸이 힘들어서라도 집에 가자 싶은데..... 아 낮에는 집에 가면 또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야..”
“그치.. 애들이랑 다시 시작해야 하지...”
그녀는 늘 헤어지기를 아쉬워했다. 결혼과 아이를 싫어했던 그녀는 연년생 어린 남매를 키우는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어쩌다 생기는 ‘노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녀, 오늘도 헤어질 때마다 나오는 가기 싫다 소리가 아직도 어린 소녀의 목소리 같다. 날이 너무 추워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다 같이 차를 타고 움직였다. 날은 추운데 햇볕이 따뜻하게 차 안을 비췄다.
“아... 이 차 타고 그냥 어디 갔음 좋겠다. 우리 바다 보러 갈까?”
“뭐~! 너 진짜 가기 집에 가기 싫구나..”
우리 셋은 깔깔깔 웃어댔다.
그녀들을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 카톡에는 오늘 밥이 맛있었다. 꼭 여행 간 것처럼 즐거웠다는 훈훈한 얘기들이 오갔다. 잠시 소파에 앉아 은유의“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는데 오늘 만남과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시댁 제사를 마치고 늦게 집에 와 잠든 아이와 남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술 한 잔 하자는 친구의 문자에 택시를 타고 ’나가 놀았던‘ 글이었다. 마지막 글귀에 ‘나는 안다. 누구를 만나고 싶은 자가 아니라 어디로 떠나고 싶은 자는 달린다. 전속력으로’라고 적혀 있었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그녀에게 글귀를 찍어 톡을 보냈다.
“바다 갈까? 전속력으로”
그녀가 답했다.
“진짜 홀몸이었으면 떠났다.... 즉흥이 사라진 인생이라니.. 서글프네.”
“그러게. 나도 진짜 즉흥 사랑하는데...”
우리는 즉흥과 자유라는 뿌리를 가졌지만 의무와 계획이라는 화분에 심겨 베란다에 놓인 나무 같았다. 화분 속에서 죽지 않으려 애쓰며 살고 있다. 나무에 꽃이 피면 웃고 꽃이 지면 울었다. 꽃이 피고 지는 삶의 순환을 인정하면서 적응하고 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을 느끼며..
언젠가는 광활한 숲속 어딘가에서 한없이 뿌리를 내 뻗을 날을 기다리며...
내년 꽃이 필 때쯤엔 그녀와 바다를 꼭 보러 가고 싶어진다.
10년 전 친구 두 녀석과 종로 별다방에 죽치고 앉아 영양가 없는 얘기들만 주고받던 시간.
참을 수 없는 무료에 갑자기 청량리로 가자며 전속력으로 뛰어 마지막 열차를 탔었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 들어본 적 없는 곳에 내려 택시 잡고 찜질방에 갔다. 별다방에서는 하지 않던 얘기들이 새벽까지 계속됐다. 다음날 낯선 곳에서 걷고 사진 찍고 웃으며 돌아다녔다.
“우리 어디서 차 타야 하지?”
“몰라~”
“여기가 대체 어디인 거야?
“몰라~”
우리는 하하 하하 하하 웃어댔다.
두 친구 중 한 명은 아들 하나를 낳고 작은 학원 원장이 되어 일주일에 6번 수업을 하고 일요일에 시댁과 교회를 가면 일주일이 지나가는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아직 싱글이고 올해 아버지와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작은 교회 전도사로 살고 있다. 일 년에 한 번쯤 셋이 모인 날이면 그때 일을 매번 얘기 하지만 누구도 우리 또 그러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이 더 지나고 난 후는 모를 일이다. 삶의 역동과 울림, 희열은 대부분 즉흥에서 시작되니 일상의 무료함을 참지 못한 날, 누군가 전화를 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