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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Jan 17. 2018

4살의 행복

네가 말했지_11

석이와 잠들기 전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빨리 자라고 닦달해 눕혀놓고서는 내가 더 이말 저말 해댄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고마워’ 도 빼먹지 않고 얘기해준다.


석아, 너는 언제 제일 행복해?”

엄마 아빠 안 싸울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때 나와 남편과의 관계는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첫 째 석이 때는 칼 퇴근하고  매일 석이를 씻겨주고 놀아주고 했던 남편이 둘째 찬이를 낳자 마자부터 바빠졌다. 함께 먹는 저녁은 한 달에 3~4번뿐이었다. 말 그대로 ‘독박육아’에 지쳐가고 있었다.

석이와 찬이는 22개월 차이다. 두 돌이 되기 전 동생을 본 석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새벽마다 악몽을 꾸는지 짜증내며 울고 잠을 깊이 못 잤다. 찬이 젖을 물리면 ‘젖 먹이지마~~’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어댔다. 찬이 아기침대에 몰래 올라가 잠들기도 했다. 둘 다 울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동시에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았다. ‘그만 울어 제발 애들아 그만 좀 해~’ 그 둘을 업고 안고 나도 울었다.


남편도 나도 석이도 ‘다 어쩔 수 없다’라는 바다에 그저 둥둥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구출해줄 배는 오지 않았다. 애들 재우고 지친 몸으로 누워있는 새벽쯤 들어온 남편이 깜깜한 방에 앉아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선 죽을 것 같이 힘들다 말했다. 그런 그에게 ‘애를 동시에 업고 안고 같이 울었어. 오늘도 석이가 우유를 엎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찬이를 거실에서 목욕시키고 옷 입히는 사이 석이가 욕조를 들어 올려 물을 다 쏟아내 처음으로 석이 엉덩이를 때렸어. 나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나 미칠 것 같아. 허리가 아파. 좀 주물러 줘.’라고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내가 제일 힘들다며 나 좀 봐 달라 소리쳤지만 온몸에 다정함과 배려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 땐 그도 나도 무죄였지만 서로 유죄를 덮어 씌웠다. 남편은 힘들게 돈을 벌어 와도 다정한 아내의 말 한마디를 받지 못했고 나는 힘들게 아들 둘을 육아해도 다정한 남편의 한 마디를 받지 못했다. 아니다. 서로 그래도 수고한다. 애 쓴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거라 토닥 거리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애들 잔 후였다. 나도 안다. 아이 앞에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석이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남편은 12시가 넘도록 들어오지 못했다.   


만화를 보여줄 때, 곰돌이 젤리를 사 줄 때, 딸기를 먹을 때 그리도 행복한 표정을 짓더니 사실은 남편이 내게 뽀뽀하는 모습을 보며 옅게 미소 짓는 표정이 더 큰 행복의 표현이었다.


2015.12.07. 석이 4세




이제 그 폭풍의 바다를 지나고 순항중이다. 인생은 파도를 잘 타는 거라 했던가. 파도는 어떻게 해야 잘 탈까? 힘을 빼야한다. 파도가 이끄는 대로 내 몸을 그냥 두면 된다. 그때 나와  남편은 너무 힘을 주었다. 무거운 옷과 신발까지 신은 채로 바다에서 허우적댔다.

언젠가 다시 그와 비슷한 폭풍을 만난다면 우리는 가벼운 몸으로 파도를 잘 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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