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서로 요르단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어딜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성지순례 여행지를 돌기로 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으로 알려진 요르단 예수님 세례터(The Baptism Site of Jesus Christ), 인구의 99%가 이슬람인 요르단의 기독교 도시 마다바(Madaba), 모세가 죽기 전 약속의 땅으로 본 곳으로 언급된 느보산(Mt. Nebo). 요르단에서 저 세 곳을 쉽게 돌 수 있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기사 고용 서비스를 예약했다.
우리 여행의 목표는 부지런히 움직여서 저녁 시간 전에 암만으로 돌아오기였다. 아침 7시 30분에 우리 집에서 출발한 차량은 친구들 집으로 가서 친구들을 태우고 세례터로 향했다. 사해 북쪽에 위치한 예수님 세례터는 암만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예수가 성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그곳, 약 60km를 달려 세례터에 도착했다. 세례터에서는 현지인 가이드와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각 장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모이는 장소로 가니 이미 몇 명의 관광객이 차에 올라타 있었다. 우리도 곧바로 차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드도 합류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세례터 여정이 시작되었다. 세례터를 한 바퀴 돌면서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이 원래는 물이 많은 곳이었다거나, 다른 종교 건물이라거나, 지금은 그저 메마르고 휑하기만 한 곳인데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푸르렀을 과거를 상상했다.
건물 몇 개를 본 다음 한 공터에서 내려 기념품 가게이자 역사적 물품이 몇 점 남아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일부 기념품에는 팔레스타인산(Made in Palestine)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거나, 스티커가 붙어있기도 했다. 빈 손으로 건물을 나와 바깥을 구경하다, 가이드를 따라 공사 중인 오솔길을 걸었다. 조금 걸으니 오래된 목조 건물이 나왔는데 가이드가 사진을 찍을 시간을 준다. 어떤 곳인가 하니 그곳이 바로 예수님 세례터였다. 오래전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는데 지금은 물이 메말라 바닥이 보일 정도였다. 기원전 2-3세기 순례 기록이 남아있는 곳인 데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래서인지 2014년 방문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국왕 가족의 모자이크 작품도 보였다. 모자이크 작품은 없었지만 2000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2009년에는 베네딕토 16세도 방문했다고 한다. 가톨릭 교황이 무려 3명이나 방문한 곳이다. 세례터와 수도원 잔해를 본 뒤 요단강으로 향했다.
"요단강을 건넜다."라고 하면 '죽음'만 떠올리는데 기독교인에게는 '죽어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속'을 뜻한다고 한다. 나와 친구들 셋은 살아서 가이드를 따라 '요단강'*으로 향했다. 어쩐지 신성한 이곳에서 들린다기엔 다소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요단강터에 도착하니 다소 허름하게 지붕만 있는 목조건물, 요르단 국기,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이 보였다. 음악 소리의 근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요단강은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리아 사이를 흐른다. 그래서인지 요르단 쪽 요단강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이스라엘 땅의 요단강 관광지 건물이 보였다. 요르단 쪽에는 목조 건물이라면 이스라엘 쪽에는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있었다. 폭이 10m도 안될 것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세례터 관광객이 모였다. 한쪽은 조용히 다른 한쪽은 노래를 틀고 신나게 즐기며. 예수님 세례터에서 할 일은 다 끝냈다. 세례터 위치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종교 상관없이 모두 싸우지 않고 잘 살았으면 하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려 준 기사를 만나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느보산으로 향했다.
나는 요르단에 와서 처음으로 교회 경험을 해봤지만 다른 두 친구들은 종교 생활을 잘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 느보산이라는 지역이 나온 것을 알고 있었다. 느보산으로 향하면서 친구들한테 그 지역의 종교적 의미를 물었으나 다들 머리를 긁적여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40년 만에 느보산에 도착해, 자기는 갈 수 없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바라보고 120세에 생을 마감했다는 정보가 나왔다. 하느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느보산에 도착하여 모세가 가지 못했다던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푸르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약간의 나무를 제외하면 황무지나 다름없어 보였다.
백성을 이끌고 가던 모세에게 물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다.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바위에 '명령'해서 물을 내는 대신 돌을 두 번 내리쳐서 물을 내 노여움을 샀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가지 못한 건데 그때 돌을 내리친 지팡이가 느보산에 있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닐까 한다. 상 중에 백성들의 원망까지 사서 힘들어 지팡이 두 번 휘둘렀다가 약속의 땅에 가지 못한 거라면 다소 억울할 것 같기도 하지만 내막을 모르니 말을 줄인다. 그렇게 가나안 지역과 모세의 지팡이를 본 뒤 요르단의 기독교 도시라고 불리는 마다바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추천받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거리로 나왔다. 암만 구시가지와는 다른 느낌의 거리였다. 판매 물품 정리도 잘 되어있고, 도로도 벽돌로 깔려있어 걷기에 좋았다. 유명 관광지에서는 유럽에서 온듯한 관광객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마다바에 위치한 초기 비잔틴 교회 성 조지 교회(Church of Saint George)에서는 가장 오래된 모자이크 지도를 볼 수 있다. 성지 순례 여행 계획을 짜면서 마다바에 가서 모자이크 지도 보기를 넣었으나 아침 일찍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방문한 두 곳에서 시간을 꽤 보내서인지 관광지는 거의 못 갔다. 교회 닫는 시간을 알아보지 않고 점심을 여유롭게 먹고, 카페에서 꽤 오래 쉬어서일 수도 있겠다. 뒤늦게 교회를 찾아가다 몇 분 뒤에 닿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자이크 지도는 인터넷으로 보기로 하고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기독교 관련 기념품, 요르단 기념품을 구경했다.
성 조지 교회를 뒤로하고 성 요한 교회로 향했다. 요르단인의 90%가 이슬람교를 믿기에 (중동에서는) 상대적 소수인 기독교가 그 세력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유럽 국가에 있는 교회에 비하면 아담하지만 오히려 적은 인원으로 키워낸 것에 가점을 주고 싶었다.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종이 있는 탑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교회를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지어진 교회 건물, 아랍계 얼굴의 기독교인 단체사진 등과 같은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종교의 힘이란 대체 무엇인가. 다시 우리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암만에 도착하니 저녁시간 때가 되었다. 천주교 성당 옆 이탈리아 신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신부님이 이라크 난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찾기 힘든 요르단 식당 중 거의 유일하게 돼지고기(프로슈토)가 든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난민들이 조리 교육을 통해 음식을 직접 만들고, 내주기까지 한다는데 좋은 취지와 별개로 그렇게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이렇게 천주교 운영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고 나서야 여행이 끝났다. 성지 순례 여행을 핑계로 친구들과 잘 놀고 잘 먹으며 추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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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im_eyo/223043727077 (돼지고기 들어간 이탈리아식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