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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Oct 03. 2021

글쓰기 세 번째 수업: 당신의 본캐는?

저는 본캐는 없지만 부캐는 많더라고요

아이릳 일상툰 인스타그램 @i_kiffe

 두 번째 수업은 숙제도 못했을 뿐 아니라 일이 있어서 불참했다. 자기소개서 쓰기 힘들어서 안 간 거 절대 아님! 결석은 했지만 글쓰기 단체 톡방에서 세 번째 수업 숙제를 받아보았다. 아아- 몰랐으면 강의실에 조용히 들어가서 숙제 제출할 때 "앗, 지난주 결석해서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을 텐데 불가능해져 버렸다.


  다행히도 이번 주 숙제는 자기소개하라는 지난주에 비하면 쉬웠다. <당신의 본캐와 부캐는?>이었으니 말이다. 방송인 유재석 씨가 부캐로 트로트 가수 유산슬, 요리사 유라섹, 연예 기획사 대표 지미유, 지미유의 프로듀서 동생 유야호 등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캐 생성을 시작했다.(다른 연예인이 먼저 시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캐/부캐를 처음 접한 건 유재석이다.)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캐릭터들이 '부캐'라는 단어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이다.


(*본캐는 '본래의 캐릭터'의 준말이다. 원래의 내가 누구인지 표현하면 되지만 주로 직업이 본캐로 보인다.

부캐는 '본래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의미한다. 평소의 내(=본캐) 모습이나 직업과 다른 캐릭터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시도하는 또 다른 나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싹쓰리에서 이효리는 린다 G, 비는 비룡이라는 부캐를 만들어냈다.) 


  자기소개를 쓰는 것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나의 다른 캐릭터를 부수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갈렸다. 나만 소개하라고 하면 쓸 게 없는데,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쓰라고 하니 쓸게 생겼다. 남들이 보기엔 쓸모없어 보여도 부캐는 본디 본캐를 보조해주는 역할이니까 뭐든 드러내도 괜찮다고 여겨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유일하게 막힌 부분은 내가 무직이라 특별한 본캐가 없다는 것 뿐이었다. 무직(無職). 말 그대로 직업이 없다는 건데 현대사회에선 직업, 스스로 밥 벌어먹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이전에도 그랬겠지만 인터넷의 발전으로 요즘 더 드러나는 걸 수도 있다). 직업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업이 없어서 이 세상의 먼지보다 못하다는 기분을 느껴보았고, 깊은 우울의 늪에도 빠져본 사람이 나다. 그랬던 내가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며 글쓰는 법을 배우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냈다. '글쓰는 나, 아이릳'.


  내가 글을 쓴다니! '버킷리스트에 '작가 되기'가 있었지만 진짜? 내가? 글을 쓴다고? 그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없는 본캐는 제쳐두고 부캐부터 하나씩 적어보았다.


1. 블로거

10년 가까이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여행블로거로 시작했으나 세계일주를 하기엔 깡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돈이 모이는 대로 가까운 나라 여행도 하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약 2년 간 여행 간 곳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일상, 영어, 프랑스어 공부 블로거가 되었다. (잡동사니 블로그라는 뜻)


네이버에서 티스토리로 몇몇 게시글을 옮겼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 노래를 번역하여 올리고 있다. 가을만 되면 셀린 디옹의 노래가 생각나서 최근엔 그의 앨범 <D'EUX>에 수록된 곡을 다 번역해볼까 생각 중이다. 프랑스어 여전히 미숙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언어 배우는 거 너무 재미있어!


2. 인스타그램에서 인스타툰 작가(?)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내 캐릭터를 만들어서 박은 물품 제작도 하고 싶었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벌써 1년이 되었다. 팔로워 수는 부족하지만 꾸준히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작가님이라고 불리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작가님이라는 직업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다.


3. 우리 집 요리사

자칭 우리 집 셰프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한 때는 요리하는 장면을 찍어서 블로그에 <자취요리>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으나 최근엔 다른 글 쓰기에 시간을 넘겨줘서 업데이트가 뜸하다. 그래도 나의 다른 캐릭터는 우리 집 요리사다.


4. 브런치 작가

최근에서야 얻은 부캐 중 하나. 이걸 습득하는 일이 다른 부캐 획득하는 것보다 배 이상으로 어려웠다. 브런치 측에서 날 받아주지 않으면 부캐 생성 자체가 불가능한 거니까. 그래도 두 번? 의 도전 만에 얻어냈다! 이 부캐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캐 몇 가지 정리했을 뿐인데 벌써 뭔가 된 것 같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어있는 본캐란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될 것 같은 기분을 유지하면서 여러 번의 수정 끝에 제출을 했다. 수업 3주 차. 당연히 해야 하는 숙제를 했을 뿐이면서 당당하게 들어가 자리에 앉아, 강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수업을 따라갔다. 제출한 숙제를 모든 수강생 앞에서 읽고 평을 듣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다른 수강생은 두번째겠지만 나는 첫 번째인) 글 낭송을 하면서 글 쓸 때 흐릿하던 표현할 수 없던 기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글을 다 읽고 나선 그 기분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의 형태가 되었다. 이때의 자신감이 허황된 나의 장밋빛 추측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허한 희망으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어졌다. '무직'이라고 기가 죽지도, 남들 앞에서 숨고 싶어 지지도, 남들의 시선을 미리 걱정하며 우울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런 내가 우울해하는 나보다 더 좋으니까.



글쓰기 수업 3주 차. 


자기소개서 숙제 패스하고 두 번째 숙제를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 주. 이어진 글쓰기 수업은 글쓰기 실력의 향상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두려움을 떨쳐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한 번 떨어지긴 했지만, 결과가 중요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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