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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Sep 23. 2021

글쓰기 두 번째 수업: 자기소개

설렘> 두려움> 결석

글쓰기 수업 첫날 여담의 마무리

강사님은 그런 식으로 쓰라고 내주신 숙제가 아닌데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힘들게 한 자기소개서, 5음절의 이 글자는 다시금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틀의 '자기소개서'를 써서 두려움을 극복해야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두려움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글쓰기 두 번째 수업. 수업 첫날 <자기소개서 써오기>라는 아주 쉬우면서도 어려운 숙제를 받았다. 숙제를 받고 설레서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는데 좋은 건지 모르겠다. 이 두근거림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된 설렘이었나, 자기소개서를 숙제로 받아 든 N년차 취준생의 두려움이었나. 또는 이 숙제를 해내지 못할 것을 예견하고서 "숙제 못했어요"라고 말할 것에 대한 두근거렸던 걸까.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 했고, 제대로 써보고 싶어서 (약간의) 돈까지 지불하고 신청한 수업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나가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내 자의로 행해진 것이다. 다만 첫날부터 자기소개서를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 싱숭생숭해진 것이 문제다. N년간의 취업 준비를 하면서 (과장을 보태) 수 백번은 써 본 자기소개서. 작가이자 수업 교수님이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당신을 소개해주세요.'지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써오라는 건 아나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과정이고, 글을 쓰기 위해선 나를 잘 알아야 할 테니 써오라고 한 게 아닐까. 그런 의도로 내 준 숙제일 텐데 프로 자소서 제출러였던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노력은 했다. 마감 5일 전이었는데도 "자소서 제출 마지막 날이야!!"라고 외치며 나를 극한의 상황 속에 몰아넣었다(나는 마감이 닥쳐야 하는 편이다). 그랬는데 진짜 숙제 제출 하루 전이 되었다. 단 한 줄도 못썼는데 벌써? 텅 빈 아래한글 스크린 위 반짝이는 커서를 바라보면서 비슷한 단어를 쓰고 지우기만 수백 번. 글 쓰고 싶은 사람. 글 쓰고 싶은 취준생, N년차 취준생이자 백수, 자(기)소(개)설 잘(?) 쓰는 아이릳, 꿈을 찾고 싶은, 글 쓰면서 좋아하는 것을 찾고픈 아이릳... 비슷한 어감의 단어의 나열만 의미 없는 반복. 기업에 맞춰 약간의 과장을 보태 멋진 내 모습을 만들어내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이 쉽겠다.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힘들어졌다. 수년 동안 쓴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나는 거의 완벽한 인간에 가까웠다. 외국인들과의 교류에 능한 사람. 리더십보다 팔로우십이 있어서 동료들의 화합을 이끄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힘을 써 본 사람...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서 실무에 들어가도 금방 적응하고 나를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 하지만 지원동기, 입사 포부, 경험 등을 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은 어려웠다. 오히려 회사를 위한 나를 빼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회사에 맞춰져 있었다.


오랫동안 작성한 자소서 속 모습처럼 사는 것 같았으나 그 모습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내 실제와 큰 괴리감이 있는 존재였다. 진짜 나는 자소서 속 만들어진 나한테 밀렸다. '나였던' 내 모습에 대해 써야 한다니. 그 어떤 '자기소개서' 제출보다 어려웠다. 5일 동안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실제로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면 머리카락을 뜯거나 끊는다.) 글쓰기에 매진했으나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대체 나는 누구지?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뭘 싫어하고(이건 조금 확실),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를 소개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두 번째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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