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아직 거기 그대로 있었다

숲의 포레스트 하이! 모든 나무는 경이롭다.

by 포레스트 하이
숲은 아직도 거기 있는가? 숲은 아직 거의 그대로 거기 있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자서전』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괴테는 식물과 가드닝을 유난히 좋아해서 숲과 나무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떡잎’이란 단어도 괴테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지요. 철이 들면서 산이 주는 풍성함과 푸근함 무엇보다 평온함이 기꺼워 매주 산을 찾았습니다. 숲은 항상 반겨주었고, 늘 거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는 숲해설가입니다. 「숲 연구소」의 ‘에코소피아 입문 과정’을 마치고, 허전한 마음에 전문과정까지 밟았습니다. 170시간에 달하는 이론수업과 30시간의 현장실습 그리고 필기시험을 거쳐 숲해설가가 되었습니다. 숲 해설을 한다고 하니 으레 나무나 꽃의 이름을 물어보곤 합니다. 식물의 이름을 아는 것은 숲해설가의 일 중 단편일 뿐입니다. 나무와 풀의 생태, 숲의 지혜를 이해하고, 숲을 찾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해 나가는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숲을 공부하기 전까지 나무는 그냥 나무였고, 숲은 나무가 많이 모여있는 수풀 림(林)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뭇가지와 잎들이 만들어 낸 수관(樹冠)을 즐기고, 나무껍질의 촉감을 느끼고, 잎맥의 모양을 관찰하고, 꽃잎의 모양, 암술과 수술의 개수도 세기도 합니다. 가끔 꽃차례의 비밀을 알아차리기도 하고요, 꽃의 색깔도 삼원색이 전부였지만, 연미백, 진노랑, 연분홍, 진홍색으로 다양해졌습니다. 시와 소설을 읽어도, 그림을 봐도 나무와 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거지요. 물론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란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숲 - 등산, 산책을 포함해도 좋습니다 - 을 다녀온 후 기분 좋은 피로감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의 효능이, 신갈나무의 넉넉한 그늘이 아니라도 숲의 안정된 모습 자체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봄의 숲, 성장을 다투는 여름의 숲, 번식을 마무리하는 가을의 숲 그리고 다음 해 봄을 위해 스스로 휴면하는 겨울, 어느 계절의 숲인들 마다할 수 있을까요?


한때 마라톤에 탐닉한 적이 있습니다. 달리다 보면 순간 다가오는 날아갈 듯한 기분을 러닝 하이라고 부르지요. 숲 속에 들어가면 오묘한 힐링을 느끼는데, 저는 ‘포레스트 하이’라고 불렀고 저의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숲 속에서는 잡생각이 들어올 겨를이 없습니다. 하얀 도화지가 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들어오는 푸른 하늘이 좋고, 어쩌다 애기똥풀, 개망초, 생강나무, 상수리나무 등 눈에 익은 푸나무나, 어치나 청설모라도 만나면 기분은 한껏 올라갑니다. 바위 한쪽에 앉아, 한 모금 갈증을 채우면 스트레스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없습니다.

나무의 수관기피 현상 / Pixabay

서른세 해를 일하고 퇴직을 했습니다. 지금부터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영전략, 조직관리, 노무관리와 같은 심력을 필요한 업무를 주로 담당했었지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드러커, 콜린스, 고노스케 등 대가들의 글을 마치 내 것인 양 포장한 적도 많았습니다. 경험을 글로 풀어낼 재주가 부족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이 꼬이면 휴가를 내고 산과 숲을 찾았습니다. 숲길을 서너 시간 헤매다 보면 머리가 단순해집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뭐!” 하고 내려놓으면 그뿐이었습니다.


숲의 생태계도 일종의 사회적 구조와 계층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복잡계라는 거지요,. 숲에서는 풀, 떨기나무, 활엽수와 침엽수가 군락을 이뤄 협력하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나무 둥지 아래 흙 속에는 수십조 개의 미생물과 박테리아, 원형 동물 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숲 속의 생명체들은 다른 개체들과 소통하며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사회가 변하듯 숲의 모습도 매일매일 다릅니다. 어제의 숲은 오늘의 숲과는 다름을 압니다.


헤르만 헤세도 괴테 못지않게 나무와 숲을 사랑했지요.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에서 헤세는 봄의 미풍에 겨울 잎들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적고 있습니다. "모든 나무는 모두 성소(聖所)"라고도 했고요. 문득 숲의 세계와 직장생활을 같은 묶음으로 연결해 보면 어떨까 착안해 봤습니다. 직장인의 수명을 '약동하는 봄, 거침없는 여름, 준비하는 가을 그리고 기다리는 겨울'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를 숲의 생태로 풀어보는 것이지요. 여기에 에피소드, 경영경제 이론을 덧붙이고, 그동안 수집해 놓았던 좋은 문장을 고명으로 올릴까 합니다.


제목을 고민하던 중,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아다지오> CD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단테와 라르고 사이의 느린 속도를 말하지요. 제겐 적당한 속도입니다. 『숲의 아다지오: 겨울 그리고 봄, 여름, 가을』로 정해버렸습니다. 회사를 나와 저만치에 떨어져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성취와 기쁨보다 후회와 반성의 감정이 더 많아 아쉽기만 합니다. 가수 하덕규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라고 노래했지만, 정작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지 않을까는 우려가 앞섭니다. 서른세 해 경험에 대한 소일거리다 보니 그렇게 거창한 글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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