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는다.

우회축적 전략 - 사이클로이드 곡선 - 페스티나 렌테

by 포레스트 하이

퀴즈! 노아의 방주에는 모두 몇 종류의 식물은 실렸을까요? 모든 동물의 암수 한 쌍은 태웠지만, 식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식물은 생명이 아니라고 여겼던 걸까요? 식물 판 노아의 방주를 아십니까? 노르웨이 스발바르 스피츠베르겐 섬 지하에 설치된 「스발바르 글로벌 종자저장소(Svalbard Global Seed Vault)」입니다. 약 107만 종 5억 개의 씨앗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핵전쟁, 기상이변, 자연재해와 같은 지구 최후의 날이나, 생태환경의 변화로 식물 자원이 멸종되거나 사라지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세계 두 번째로 종자금고 설치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지하 200m 공간에 설치된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입니다. 외관의 모습은 씨앗의 모형을 본떴다고 합니다.


식물의 씨앗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할까요? 종자 금고에 보관하려면 먼저 우량종자를 선별합니다. 그런 후 씨앗의 최적 발아 환경을 기록하여 영하 20도, 습도 40%에서 비치합니다. 만약 제주도가 원산지인 구상나무가 예기치 않은 이유로 멸종한다면 여기에 보관한 씨앗을 이용해 기록된 발아 환경에 맞추면 되겠지요.


자연 상태에서는 어떨까요? 2천 년 동안 휴면 상태에서 깨어난 씨앗도 있습니다. 2005년 이스라엘 헤롯 왕 요새에서 대추야자 씨앗 3개를 발견했고, 그중 하나를 싹 틔우는 데 성공한 것이지요. 이 대추야자의 애칭은 969살까지 살았다는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경상남도 함안 성산산성 고려시대 유적 지하에서 발견한 700살의 연꽃 씨앗을 싹 틔운 기록이 있습니다.


종자연구소.jpg 왼쪽부터 스발바르 글로벌 종자연구소 및 내부 전경, 백두대간 글로벌 시트 볼트 / 나무 위키


씨앗은 물, 공기, 온도가 최적의 조건으로 주어졌을 때 비로소 싹을 틔웁니다. 그런데 싹틀 때가 왔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씨앗은 이미 배아(胚芽, embryo)이고, 뿌리, 줄기, 잎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씨앗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이지요. 단단한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잠을 자고 있을 뿐, 씨앗은 숨을 쉬면서 물질대사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랐던 환경과 같은 온도와 물만 제공하면 언제라도 싹을 틔울 준비가 되어 있지요. "나무는 자신의 과거를 압축해 씨앗에 담는다."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길을 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봄이 오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한겨울에 봄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적정한 때가 오지 않으면 일을 이루어 낼 수가 없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때’가 올 것이란 믿음으로 조용히 기다린다. 절대로 초조하게 허둥대지 않는다.


대단한 혜안이지요. 봄이 왔다고 바로 벚꽃을 볼 수는 없고, 벚꽃 가지를 잘라봐도 꽃을 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중국의 노신도 꽁꽁 얼어붙은 겨울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며 '한응대지발춘화(寒凝大地發春華)'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회사생활에서도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회사는 늘 바쁘고 새로운 돈벌이를 찾고 있습니다. 개인의 사정을 하나하나 배려하고 알아줄 여유가 없지요. 개인은 어떻게든 회사의 속도와 흐름에 맞춰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시대가 오기를 진득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사실은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다가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회인지, 스쳐 지나는 일상인지 알아챌 수 없습니다. 뒤처질 것 같아 조급하고, 애가 타 빨리 달리려고만 하니 흘려가는 것도 모르고, 벅차고 힘든 것이지요. 마라톤도 등산도 초기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 완주와 완등이 힘들다는 점은 경험했을 겁니다.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지식과 역량을 꾸준히 계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기회를 만나면 낚아채는 거지요.


한국 경영학의 대가 윤석철 교수는 저서『삶의 정도』에서 '사이클로이드 곡선을 활용한 우회축적(roundabout accumulation) 전략’을 주창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매가 땅 위의 들쥐를 낚아채는 모습은 천천히 하강하다 순간적으로 최고의 속도를 내는 완만한 곡선이지요. 최고의 속도(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반드시 에너지(역량)를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히딩크 감독의 “가능성은 50%다. 매일 1%씩 올려 100%를 만든다.”라는 말도 우회축적 전략입니다. 노력의 결과는 즉시 다가오진 않지만, 배반하지도 않습니다. 경험과 역량의 이름으로 DNA에 나날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지요. 강태공의 72년의 낚시질, 제갈공명의 삼고초려, 초나라 장왕의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 날지도 울지도 않고 3년을 기다린 새 –의 고사는 다 ‘때’를 기다린 결과입니다.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좌우명은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라고 합니다.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뜻의 모순어법입니다. 천천히 어떻게 서두릅니까? 처음 방향을 잡을 때는 심사숙고하되, 일단 결정하면 전격적으로 행동하라는 의미랍니다. 프란츠 카프카도 성급함을 경계했습니다. 『비유에 대하여』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두 가지 원죄가 있다. 그건 바로 성급함과 태만함이다. 인간은 성급함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낙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원죄는 어쩌면 오직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건 성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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