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물고기-큰 연못 효과 혹은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
눈향나무, 눈주목, 눈잣나무, 눈측백! 나무 이름 앞에 첫 글자로 모두 ‘눈’을 달고 있습니다. 처음 ‘눈(雪)’을 상상하고는, “아, 눈 속에서 자라는 나무구나." 정도로 여겼습니다. 나중 ‘누워있는’, ‘누운’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들은 평지에서는 곧게 자라지만, 고산지대 산꼭대기에 자랄 때는 누워버리고 맙니다. 설악산, 소백산, 태백산 등 한반도 중북부의 높은 산 정상 부근이 이들의 터전입니다.
이들 식물의 원래 유전자는 똑바로 자라도록 설계되었지만, 새나 동물에 의해 몇몇 열매들이 높은 산꼭대기로 이주당했을 겁니다. 이들은 고산지대의 강한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야 했고, 수십 세대를 거치면서 적응한 결과, 마침내 ‘눈’이란 접두사를 획득하게 된 것이지요. 생존을 위한 유용한 변이 유전자를 대물림해 온, 다윈이 말한 위대한 자연선택의 결과입니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입니다만, 식물에게는 각자 맞는 크기의 화분이 있습니다. 테이블 야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하나는 2m 정도 자랐지만, 다른 하나는 30㎝ 크기에 불과해 걱정되었습니다. 동네 화원에 물어봤더니, 큰 화분으로 바꾸라 하더군요. 분갈이하려 해체해보니, 큰 화분의 뿌리는 마치 화분을 터트릴 기세였지만, 작은 화분의 뿌리는 흙이 파삭할 정도로 부실했습니다. 큰 화분으로 분갈이해 주었더니, 지금은 10㎝는 더 자랐고, 새잎도 군데군데 나오고 있습니다.
역시 “큰 인물이 되려면 큰 물에서 놀라.”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 사람은 그릇이 크다 작다 할 때와 같은 맥락이지요. 『아웃 라이어』, 『티핑 포인트』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 행동심리를 통찰했던 말콤 글래드웰은, 『다윗과 골리앗』에서 연못의 크기로 우리가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작은 물고기-큰 연못 효과(little-fish-big-pond effect)’입니다.
어느 여학생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브라운 대학과 평판이 조금 낮은 메릴랜드 대학을 놓고 고민하다,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뛰어난 학생과 교수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하면 장밋빛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입학과 함께 그녀의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주위는 온통 수재들로 가득 차 도무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큰 물고기’였지만, 브라운 대학이라는 ‘큰 연못’에서 너무 많은 ‘큰 물고기’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놓였던 거지요. 결국, 작은 물고기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만약 그녀가 메릴랜드 대학이라는 ‘작은 연못’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요? 큰 물고기가 되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연봉이 높은 일자리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실제 하버드 대학의 90%가 열등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에서는 나름 인정받았지만, 막상 큰 연못으로 옮기고 나니 상대적 열등감에 시달린 거지요.
반면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Big-fish-little-pond effect)’도 있습니다. 큰 물고기가 작은 연못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경우를 말하지요. 경제 사정이 어려워 평판이 조금 낮은 대학을 들어갔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자신감을 얻어 승승장구하는 사례는 어떻습니까? 글래드웰이 언급했던 '마태복음 효과'입니다. 일류대학 아니면 안 된다는 관념이 만연된 우리 사회풍토에서 고려해 볼 여지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같은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저도 대학 졸업 당시 대기업에 입사해 안정되지만 그럭저럭 살 것인가, 중소기업을 선택하여 상대적으로 유리한 출셋길을 밟을 것이냐를 고민했었습니다. 오만하게 들리나요? 대기업-중소기업-출세-안정의 매트릭스를 그려 보세요. 그때 중견기업을 선택한 친구가 사십 초반에 이미 임원으로 승진하여 회사 차 몰며 골프 치러 다니는 모습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안정되고 평판 좋은 대기업을 선택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대기업에서 임원 배지 달기가 군에서 별 달기만큼이나 힘들다는 점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합니다. 큰 물에서 놀아야 큰 인물이 된다고 최면을 걸어 버립니다.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맹점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직장에 들어와도 큰 연못과 작은 연못의 선택지는 펼쳐집니다. 흔히 출세하려면 비서팀, 인사팀, 기획팀을 거치라고 합니다. 공무원 세계에서 ‘청·비·총(靑秘總)’이란 은어가 있습니다. 눈치챘겠지만 청와대-비서실-총무과를 약칭하는 조어입니다. 이런 조직에 몸담게 되면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모든 사안을 사장과 임원, 장관과 차관의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 훈련이 쌓이고 쌓이면, 출세할 확률 또한 높아지는 겁니다. 큰 물고기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남귤북지(南橘北枳)란 말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자라는 달콤한 귤도 회수를 넘어가면 쓰디쓴 탱자가 된다는, 사람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뜻입니다. 큰 연못 속 작은 물고기가 되건, 작은 연못 속 큰 물고기가 되건 자신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합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선택이다.
Life is the C between B and D, meaning choices between birth and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