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 암묵지 – 멘턴(Mentern)
나라마다 유독 친근한 나무가 있습니다. 신화에 지혜의 나무, 생명의 나무와 같은 거지요. 북유럽 신화에서는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느릅나무로 여자를 만들었다 합니다. 시베리아 자작나무, 지중해 사이프러스, 일본 삼나무도 비슷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의 공간은 거대한 삼나무 숲입니다. 인디언도 신성한 나무에서 지혜를 얻었습니다. 영화 <아바타>의 홈 트리를 연상해 보세요.
우리나라는 단연 느티나무입니다. 마을 입구 정자목(亭子木)으로 자라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서낭당 옆 당산목(堂山木)으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수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만도 13점이나 됩니다. 경주 천마총은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안장이 발견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말안장의 재료가 느티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궁궐이나 사찰의 고급 재목으로도 사용되었지요. 팔만대장경 판목이기도 했고요.
노거수(老巨樹)로도 느티나무는 압도적입니다. 노거수란 나무 나이 100년 이상으로, 키가 크고 품격도 있어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나무입니다. 『2018년 산림문화 전집』자료를 보니 우리나라 총 노거수는 13,941점인데, 이중 느티나무 7,295점, 소나무 1,758점, 팽나무 1,366점, 은행나무 774점이라고 합니다. 과반이 조금 넘습니다.
우리에게 느티나무가 친근한 이유는 정자나무의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정자나무가 되려면 잎과 가지가 풍성해야 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품위와 격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농사경험, 날씨와 하늘의 움직임과 같은 정보를 나누고, 마을 대소사를 논의했지요. 서당 아이들의 공부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광장(plaza)쯤 되겠지요.
글자가 없던 시절, 지식은 말을 통해 기억으로 전승되었습니다. 글자가 발명된 후에도 차마 글로 전달할 수 없는 지식이 있었을 겁니다. 느티나무 아래 공간은 집단지성(group knowledge)이 형성되고, 전파되는 거래 장터였습니다. 경험과 통찰 같은 지혜를 말합니다. 바로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지요. 암묵지의 정의가 ‘형식을 갖춰 표현할 수 없는 축적된 지식’이고 보면 딱 들어맞습니다.
암묵지는 직원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됩니다. 고객의 특징, 결재와 보고 방법, 자료수집 노하우, 휴먼 네트워킹과 같은 '나만 알고 있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지요. 암묵지의 반대편에는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가 있습니다. 형식지는 지식경영의 이름으로 효과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만, 암묵지에 관해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직원이 획득한 암묵지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당연히 회사 자산이겠지요. 그래서 회사는 어떻게든 직원들의 머릿속에 내장된 암묵지를 공유할 지식으로 체계화하려 고민합니다. 저도 전략 과제로 학습조직(Community of Practice, CoP)도 구성해 봤고, 암묵지 경연대회를 추진해 보기도 했습니다. 사무인수인계서에 암묵지 항목을 포함시켰고, 암묵지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좀처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결정적인 순간 끄집어낼 자기만의 필살기이니까요. 특히 근무 경력이 오래고, 경험이 풍부한 직원들이 암묵지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그러다 ‘라떼 이즈 호스’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보기가 좋지만은 않지요. 진작 알려주지 말입니다. 예전에야 대단하다 추켜세웠지만, 지금은 ‘꼰대’로 몰릴 뿐입니다. 나이와 경험이 더는 권력이나 자산이 되지 못하는 시대니 까요.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조지 오웰이 말했다고 하지요. 기성세대가 ‘헛똑똑이’라 부르는 청년세대에게 주는 경구와 같이 들립니다. 혹시 ‘멘턴(Mentern)’이란 조어를 들어보셨는지요? 멘토와 인턴의 합성어입니다.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인턴>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험 많은 세대가 가진 장점인 EQ(Emotional Quality)와 젊은 세대의 DQ(Digital Quality)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제도입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역 멘토링(Reverse Mentoring)’ 제도와도 같습니다. 씁쓸하면서도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We are smarter than me』! 우리나라에서는 『 나보다 똑똑한 우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특별히 잘난 ‘나’는 없고, 거대한 소수가 작은 다수를 이기는, 집단지성의 힘을 강조합니다. 최근 무형의 서비스, 지식, 재능을 거래하는 플랫폼이 우후죽순처럼 선보이고 있습니다. <숨고-숨은 고수>, <크몽-큰 꿈>, <탈잉-탈출 잉여>을 들어보셨지요?
스마트 폰이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를 ‘포노 사피엔스’ 시대입니다. 유튜브나 TED를 통해 세상의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있다고 믿지요. 하지만 경험과 지혜는 다릅니다. 『 제인 에어』에서 로체스터는 ‘스무 살이 더 많은 경험의 우월’을 주장합니다. 그러자 제인 에어는 말하지요. 경험으로 꼰대질 말라는 경고로 들려 살짝 찔립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고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제게 명령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우월한지는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달려있죠
I do not think, sir, you have a right to command me, merely because you are older than I, or because you have seen more of the world than I have; your claim to superiority depends on the use you have made of your time and exper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