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는다!

평균 이상 효과 - 정서적 퇴직 - 워비곤 호수 효

by 포레스트 하이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를 물으면 대나무라는 답변이 흔합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과 대나무는 하루 1m 이상 자라기도 한다니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나무는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지요.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라고 읊었는데, 그럼 뭡니까? ‘대(竹)’는 나무가 아니라, 풀입니다. 벼, 보리, 조릿대 등과 같이 줄기 안이 비어있는 특징을 지닌 볏과에 속해 있지요.

그럼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는 뭘까요? 봉황이 찾아든다는 오동나무입니다. 1년에 1m 이상, 10년이면 10~15m를 자랄 만큼 자라는 속도가 빠릅니다. 예전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지요. 시집갈 때 쓸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향이 좋아 가구 소재로 최고입니다. 성장이 빠른 탓에 나이테 문양이 없고, 뒤틀림도 없어 혼수나 족보와 같은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책장, 서류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5월에 허벅지게 피는 연보라색 통꽃이 매력적이지요.

가장 느리게 자라는 나무는 회양목입니다. 가뭄과 공해에도 잘 자라 아파트 정원, 궁궐, 학교에 많이 심겨 있지요. '극기와 냉정'이라는 꽃말에서 회양목의 분위기가 바로 느껴집니다. 여주 효종대왕릉의 회양목은 300살인데도 높이 4.5m, 지름은 40센티 정도에 불과합니다. 키 작은 떨기나무이다 보니 목재로 쓸데는 없습니다. 대신 재질이 단단하여 도장, 지팡이, 조각 재료로 사용됩니다. 회양목을 ‘도장 나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왼쪽부터 대나무, 오동나무, 회양목 / Pixabay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느린 건 그 나무가 지닌 고유한 형질 때문입니다만, 어디건 쓰임새는 있게 마련입니다. 조직 생활에서도 빨리 승진한다고 행복하지만은 않고, 느리다고 슬플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늘 자리가 몇 개 되지 않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지요. 조직 전문용어로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면 끝이 좋지 않다는, 빨리 승진해 봤자 내려오는 속도만 빨라진다는 비아냥과 경계의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은 일반적으로 공채라는 절차를 거쳐 같은 출발선에 섭니다. 이제 학연과 지연 같은 배경은 거의 퇴색 단계에 있지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묻지도 않고 관심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아닐 것 같지만 요즘은 거의 그렇습니다. 처음 동기들끼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정기 모임을 통해 대동 단결합니다. 우리 끝까지 같이 가는 거라고.

하지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all against all)'이 시작됩니다. 직장인의 평균 퇴직 나이가 오십 대 초반이라 하면 얼추 다섯 번 정도의 승진기회를 맞이합니다. 균열의 위기는 첫 번째 승진에서 나타납니다. 모두 승진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낙오한 선배,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 젠더 다양성 배려 등을 감안하면 입사 동기의 반도 승진하지 못합니다. 몇 차례에 걸쳐 나눠지면서 바야흐로 이산가족이 생겨납니다. 세상의 불공평함(?) 혹은 조직의 뜨거운 맛을 보고야 마는 거지요.

축하와 위로가 어색하게 오가고, 속내는 복잡해집니다. 겸손한 척하지만 결국 자화자찬하는 사람도 있고, 사내 정치의 패배라며 애써 자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절치부심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데 회사는 골머리를 앓습니다. 무기력 증세를 호소하고, 업무에 냉담해지거나 관심을 줄이는 직원들이 나오곤 합니다. 가장 위험한 '정서적 퇴직(mental retirement)'의 조짐이 넓게 번지기 시작하지요. 일부 과격한 사람은 이직을 고민하거나 심지어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거개가 자기는 외모 건 실력이건 다 평균 이상은 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평균 이상 효과(Above-Average-Effect)’라고 하는데,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도 비슷한 말입니다. 가상의 마을 워비곤 호숫가 사람들은 “남자들은 잘생겼고, 여자들은 힘이 세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근자감 – 근거 없는 자신감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승진 한차례 못했다고 해서 나락 인생은 아닙니다. 잠시 먼저 달린다고 자만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고요. 경주는 서른 해 이상 계속됩니다. 제 경험으로 입사 후 5년을 전후하여 자신의 경로를 일목요연하게 그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커리어 패스를 정하자는 말입니다. 내비게이션만 보고 운전하기보다는 머릿속에 큰 경로를 그린 후 출발한다면 길을 잘못 들 확률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선현들이 왜 ‘소년등과’를 경고했겠습니까?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의 『월든』! 매사추세츠 콩코드 숲 속에서의 2년간의 은둔 생활을 기록한 글이지요. 저는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자랄 필요가 없다’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치는 북소리에 걸음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이처럼 성공하려고 절망적일 정도로 서두르고 또 그로 인해 절망적인 일들을 저지르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듣는 음악 소리에 따라 걷게 하라. 그 소리가 아무리 신중하고 또 멀리서 울려오더라도, 그가 사과나무나 참나무처럼 빨리 숙성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봄철을 억지로 여름으로 바꾸어놓아야 할까?
Why should we be in such desperate haste to succeed and in such desperate enterprises? If a man does not keep pace with his companions, perhaps it is because he hears a different drummer. Let him step to the music which he hears, however measured or far away. It is not important that he should mature as soon as an apple tree or an oak. Shall he turn his spring into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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