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우제이 Aug 24. 2023

슬프지만 밥은 먹고 싶어

유산한 여자의 기록






나와 가족들이 밤새 기도를 한 덕분일까 둘째 날이 되자 다행히 출혈이 잦아들었다. 내일 상태를 보고 퇴원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본격적으로 슬퍼하고 싶었다. 찔끔찔끔 울면서 눈물을 닦지 않고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울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이제 다 울었다’ 이 말이 나올 때까지 울고 나면 순두부같이 울먹거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은 나의 출혈 상태를 보고 추가 시술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점심부터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당장의 걱정을 내려놓으니 눈치 없이 식욕이  찾아왔다.


나는 11시부터 시계를 계속 보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불을 개고 테이블을 올려서 밥 먹을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내 식사는 오지 않았다.


수액을 끌고 간호사에게 찾아가서 말했다.

오늘 아침 교수님께서 점심 식사부터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내 밥이 안 왔다고.


담당자가 주문을 누락한 것일까.. 남는 밥이 없을까 봐 나는 몹시 걱정되었다.


“아, 점심식사요? 환자분 점심식사는 물이에요! 이제부터 물은 드셔도 됩니다”



이럴 수가 내 점심이 물이구나..

간호사는 어제 질질 짜던 그 환자가 ‘예민한 돼지구나’라고 생각했겠지.


모든 걸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을 겪고, 바로 다음날 밥은 먹고 싶다니.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가.. 슬픈 드라마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는 먹고 싶은 것으로 채워지면서 슬픔을 조금씩 밀어내었다.

조금 남다른 방식이지만 나는 나를 돕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식사가 나왔다.

미음죽에 간장만 줄지 알았는데 네 가지나 되는 반찬을 보고 나는 기뻐했다. 그중 가자미구이는 이제껏 내가 먹어본 생선구이 중에 가장 맛있었다.

배가 부르니 기분도 나아지고 힘이 났다.



식욕은 스스로에게
힘 내! 라고 하는
귀여운 응원하는 아닐까




그날 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잠들었다.

카페라떼, 냉면, 초밥, 새우버거, 떡볶이, 팟타이, 짜파게티, 빵…



가자미구이 맛집



이전 07화 유산의 좋은 의미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