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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제이 Aug 24. 2023

무교지만 계속 신을 찾던 날

유산한 여자의 기록





다시 초음파를 보았다. 반짝거렸던 태아 심장은 반짝이지 않았다. 심장소리와 심장박동 그래프 버전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교수님의 배려로 나는 잠시 품었던 아가에게 정식으로 이별을 고하고 어깃장 놓는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참 고마웠어.
좋은 날,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드디어 산부인과의 산과 담당교수님이 오셨다. 출혈이 많고 지속되니 자연배출이 아닌 소파술을 바로 진행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시험관 이식 이후 두 달 동안 매일 먹은 아스피린이 지혈이 안 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어쩐지, 응급실에 있을 때 난임을 1도 모를 것 같은 젊은 남자 의사가 아스피린을 왜 먹었냐며 나를 추궁하더라니..



아스피린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해열진통제 아스피린과 혈전제 아스피린이 있다.

혈전제 아스피린은 주로 심혈관계 문제에 처방이 되지만,  난임병원에서도 시험관 시술 시 적은 용량의 아스피린을 처방한다.
자궁 내 혈류를 개선해서 착상에 도움이 되고, 혈전으로 인한 유산을 방지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혈액의 응고 작용을 방해해 지혈이 잘 안 된다는 것인데 만약 수술할 경우에는 2주 전에 약을 끊어야 하고, 혈전제 아스피린 복용한 환자는 출혈문제로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산 낌새가 있었거나 출혈 전 유산을 알았더라면 아스피린 복용을 중지 후 수술 날짜를 잡고서 진행했을 텐데, 이미 출혈이 심한 상태로 응급실에 왔으니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나는 아스피린을 두 달이나 먹었으니 수술 후에도 출혈 위험성이 따르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따뜻한 말투로 이야기한 내용은 어마무시했다.

소파술 후에 많은 출혈이 지속된다면 자궁대동맥에 조형제를 넣어서 출혈을 유발하는 혈관을 찾은 후 막는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술은 자궁 관련 합병증과 난소기능부전이 있기에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이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소파술이 시작되었고 나의 기도는 불과 1시간 만에 내용이 바뀌었다.


“신이시여, 제발 출혈을 멈추게 해 주세요.”


무교지만 신을 가장 많이 찾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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