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혈이 계속돼서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응급실에 빨리 가야 한다고 남편이 호들갑이었다.
나는 차에 앉기 전, 남편의 보물 1호인 차를 지켜주기 위해 준비해 온 애견배변패드를 의자시트 위에 깔았다.
“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거 필요 없어 빨리 타!”
남편은 책임감과 공포감에 떨고 있었다.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지만 분위기만 응급이었고 수액을 꽂아주는 것 말고는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만나는 의료진마다 수 차례 같은 질문만 했고 입원까지 기다림 뿐이었다.
새벽시간 응급실에는 갓난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달려온 부부, 소변줄이 잘못되어 큰 소리로 난리를 피우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 누워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와 그걸 닦아주는 남편이 있었다.
누워서 울고만 있는 나는 응급으로 마음을 다쳐서 응급실에 온 환자 같았다.
눈에서 계속 나오는 이 많은 물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만 울고 싶은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남편을 안심시키려 미소를 지어 보이면 눈은 울고 있지만 입은 웃고 있는 조커가 되었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아서 때로는 나도 내 눈물이 지겨웠다. 철저하게 감성적인 우뇌형 인간인 내가 지금은 잠시라도 우뇌의 일을 통제할 수는 없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며 내 반대편에서 서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 여러 번 유산을 겪은 사람도 많고, 출산일 다가와서 유산되기도 하는데 12주에 유산은 다행인 줄 알아.
시험관 할 때는 제발 착상이라도 되라고 바랬으니 착상 가능성은 알게 되었잖니. 그까짓 일로 슬퍼할 이유 그만 찾고 빨리 털고 일어나 ’
쿨내 나는 자아를 소환하는 데 성공한 것일까 조금 진정되었다. 그제야 이미 넋이 나가있는 남편이 보였다. 나의 보호자이자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 내 남편.
“오빠 미안해. 내가 아기를 지켜내지 못해서 아기한테 미안하고 오빠한테 너무 미안해. 내 잘못이 아닌 거 알면서도 지금은 죄책감이 들어. 아기를 품는 동안 모성애가 생겼나 봐. 다 내 잘못 같아.”
남편은 내 손을 잡고서 말했다.
“ 제이가 왜 미안해. 나는 제이만 안 아프면 돼. 제이만 있으면 되니까 미안하다는 말 제발 하지 마”
연애 6년, 결혼 6년 동안 로맨틱과 거리가 먼 이 남자가 지금 하는 말은 모두 진심 그 자체였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 안의 작은 공간 속에서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파고 인생에 남을 명대사들이 나왔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다.